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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사라져가는 분야를 지키는 '쟁이'들] ②대구 시계 수리 장인 이준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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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작동시키는 영화를 보고 시계업에 뛰어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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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교동시장 인근에는 '명품시계수리'라는 작은 시계 수리점이 있다. 이준희(64) 대표는 대구 교동시장에서 ‘신의 손’으로 불린다./대구=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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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 특정 분야의 경우 '더 이상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는 장인들을 통해서 힘겹게 기술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옛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구는 한 때 '섬유 도시'라고 불렸지만, 이면에는 '기술의 도시'라고도 불릴 만큼 다양한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한때 대구 지역에서 가죽수선부터 구두수선, 시계수리, 맞춤양복, 열쇠 등의 기술로 명성을 날렸던 숨은 고수들을 만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대구 중구 교동시장 인근에는 '명품시계수리'라는 작은 시계 수리점이 있다. 10평도 채 되지 않는 이곳을 지키는 이는 이준희(64) 대표로 교동시장에서 '신의 손'으로 불린다.

그는 "1980년대 월급도 거의 없이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 지 44년째"라며 "1984년 처음 시계 뒷백을 열었을 때 설렘을 시계를 수리할 때마다 매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시계 수리에 입문한 것은 1984년 스무 살 때였다. 당시 손기술이 꽤 있는 이들이 넥타이를 매고 고급 시계를 고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그도 무작정 시계 수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월급이 3만 원 정도였지만 낮에 어깨너머로 배워 고장 난 시계를 가지고 밤을 새우기도 했다. 나름 눈썰미 때문인지 3년 만에 수리점을 차렸고 월급쟁이 이상으로 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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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시계 수리의 가장 기본으로 시계를 모두 분해해 세척하고 기름을 먹이는 작업이다. 저렴한 수리 비용이지만 실력만큼은 장인급이다./대구=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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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카시오'에서 전자시계가 쏟아져 나왔고 '시계 시장은 끝났다'며 많은 기술자가 매장을 접었다. 전자시계는 고장도 없는 데다 고장이 나더라도 새로 사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가 시계의 수리는 줄어들었지만 고급 시계의 수리는 수요가 꾸준하길래 나까마(중간 수리업)를 시작했죠. 박리다매가 가능한 데다 다양한 종류의 시계를 접해보니 못 고치는 게 없더라고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고급 시계의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백화점이나 고급 시계점에서 구입한 시계가 고장 나더라도 '수리비도 저렴한 데 수리 기간이 짧다'는 평이 나면서 교동시장에서 '시계 명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만 들어가면 버려야 할 시계도 '팔딱팔딱' 새 심장을 가진 것처럼 작동하곤 했다.

46년째 시계 수리업을 하다 보니 사연도 많다. 할아버지가 찬 시계를 물려받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준 시계를 들고 오는 이들부터 관광차 들렀다가 우연히 시계 수리를 맏긴 중국인까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한 40대 여성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결혼식 때 받은 괘종시계를 들고와 수리를 요청했다. 시계를 열어보니 부품도 없었고 녹이 슬어 골동품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그는 녹을 없애고 부품을 깎아 만들어줬다.

"최근 스마트워치 때문에 시계 수리업이 쇠락했다는 말을 하는데 절대로 시계 수리업은 없어지지 않아요. 스마트워치가 줄 수 없는 사연이나 아날로그의 감성, 패션 아이템 분야로 확고하기 때문에 시계 수리업은 계속 호황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준희 대표는 또다시 호황을 맞고 있다. 각종 블로그와 인스타 등에서 '저렴하고 수리 잘하는 곳'으로 알려진 데다 '숨어있는 고수' 등 다양한 사연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한 40대 남성은 "명품 시계 수리를 매장보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가품도 가리지 않고 수리를 해줘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시계수리기능사 자격증이 있고 경북도 지방기능경기대회 은상, 전국 기능경기대회 동메달도 땄지만 이런 상이나 자격증보다 '실력'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최근에는 시계 수리를 배우겠다는 이들의 문의부터 강의, 온라인 강좌 등의 문의도 들어오지만 시계 수리업만 매진하고 있다.

그는 시계 역사가 6000여 년이 넘은 만큼 분야별 장인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때문에 자신은 더 수리에만 매진한다고.

"고등학교 때 시계를 조작해 타임머신을 작동시키는 영화를 보고 시계업에 뛰어든 지 50년이 다 되어갑니다. 돈을 좇았으면 다른 직업을 택했거나 얄팍한 수를 써왔을 겁니다. 대부분 기술자가 기술에만 매진한 것은 아마 장이들만의 고집인 만큼 손을 놓을 때까지 지켜온 자존심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시계쟁이'의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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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대표의 시계수리점은 지역에서 알려진 명성과 달리 19㎡ 크기로 매우 작다. 그의 작은 공간 안에서는 전자시계부터 고가의 시계까지 죽었던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응급실 역할을 하고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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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tf@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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