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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올해 상반기에만 임금체불 1조, 명절마다 '때려잡자'는데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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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명절마다 체불 집중 청산 노력하지만
일시적 조치 한계... 올해 체불 '2조 돌파' 전망
전문가 "현 상황서는 임금 늦게 주는 게 이득"
밀린 임금에 '연 20%' 이자 부과 등 대책 요구
한국일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과 노동약자 보호를 위한 전국 고용노동관서 기관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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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 3명의 월급과 퇴직금, 각종 수당까지 임금 7,200만 원을 체불한 사업주 A씨. 근로기준법 위반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됐지만 지난달 14일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기소 자체가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직원들이 밀린 임금이라도 받으려 A씨와 합의하는 과정에서, A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처벌 불원서'를 냈기 때문이다.

# 직원 300명을 고용한 건설업체 사장 B씨. 일용직 건설노동자 등 직원 27명의 연차수당 8,230만 원, 퇴직금 1억5,712만 원을 체불해 기소됐다. 밀린 임금이 2억4,000만 원으로 적잖은 액수였지만 뒤늦게 밀린 수당을 지급하고, 퇴직금도 상당 부분 청산했다는 이유로 B씨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선고를 받았다.

작년 체불 역대 최고, 올해 상반기는 더 빨랐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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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 등 여파로 올해 상반기에만 임금체불 규모가 1조 원을 넘긴 상황에서,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부가 재차 '임금체불 엄단'을 강조하고 나섰다. 정부가 매년 명절마다 관행처럼 '체불임금 집중청산'을 벌이지만 한계가 명백한 만큼, 노동계는 '솜방망이 처벌' 기조를 바꾸고 악성 체불 사업주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할 법·제도 마련을 요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민생 물가' '응급의료 체계 점검'과 함께 '체불 임금' 문제를 거론하며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새로 취임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첫 업무 지시도 "임금체불 총력 대응"이었다.

설이나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임금체불 근절' 메시지를 내고 2, 3주간 '체불임금 집중 청산 지도 기간'으로 정해 떼인 임금을 받게끔 행정력을 집중하는 것은 연례행사처럼 있는 일이다. 이 기간 동안 체불 청산 성과가 적잖이 있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조치라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개정 등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은 미비했던 사이, 올해는 건설경기 침체와 자영업 폐업 증가 등 경기 요인까지 겹쳐 연간 체불 규모가 사상 처음 2조 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임금 체불임금액은 반기 기준으로는 처음 1조 원을 돌파한, 1조436억 원으로 집계됐다. 체불 규모 역대 최고치(1조7,845억 원)를 기록한 지난해 상반기 체불액이 8,232억 원이었는데, 올해 상반기는 이보다 26.8% 증가했으니 추세가 가파른 것이다.

체불액 10% 벌금 내면 끝 "2배·3배 물게 해야"

한국일보

이동철(왼쪽 세 번째)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상담소 실장이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임금체불 실태와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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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노동계와 정치권에서는 임금채권 소멸시효 3년에서 5년 연장, 반의사불벌죄 폐지,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부과, 상습 체불 시 체불액의 2배·3배 징벌적 배상 청구 근거 마련 등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 '늦게 주면 그만큼 손해'인 구조를 확실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노무사)은 지난 1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노총 등 주최로 열린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에서 "현행 노동 행정·사법 실태를 보면 사업주 입장에서 제때 임금을 지급해야 할 유인이 없고, 오히려 적당히 늦게 지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박 노무사는 "대체로 체불임금액의 약 10% 수준인 벌금만 내면 형사책임이 끝"이라며 2020년 전국 1심 법원 임금체불 범죄 판결 분석 내용을 설명했다. 징역형 실형은 단 4%에 불과했고, 벌금형과 벌금형 집행유예가 64%였으며 벌금형 형량은 체불액의 13.1%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참다못한 노동자가 고용부에 신고하더라도, 체불 사업주가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범죄)임을 이용해 적정한 금액으로 합의하면 그것으로 민형사상 모든 책임이 없어지는 것 역시 문제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토론회에서 이동철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 실장은 "피해 노동자 수와 미지급 기간 등을 고려한 (사법부) 양형기준 정비가 필요하다"며 "미국처럼 체불액 몇 배 이상을 물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거나 행정벌로 과태료를 통해 사업주의 체불임금 청산 필요성을 강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퇴직자 체불임금에 대해서는 연 20% 이자를 더하는 '지연이자제'가 있는데, 이를 재직자에게도 확대 적용하자는 요구도 많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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