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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강한 유엔사' 추진하는 尹정부…그 뒤엔 한·미 2가지 공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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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 강화는 시대적 대세, 단순 대북 억제 틀 이상이다.”

중앙일보

김용현 국방부 장관(왼쪽 세번째)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차 한-유엔사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각국 국방 장·차관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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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사령부에 대한 현 정부의 시각은 이 같은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엔사를 북한의 도발을 막는 역할에 한정 짓지 않고 국내 여론의 변화, 국제질서의 재편과 직결되는 꼭 필요한 ‘당위적 존재’로 바라보겠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여기엔 지난 정부가 번번이 유엔사와 갈등을 빚던 상황을 ‘정상화’한다는 맥락도 포함돼있다”며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엔사 강화 작업이 제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文 정부 꺼려한 유엔사 역할 강화…현 정부는 ‘필연적 흐름’으로 반전



현 정부의 유엔사 강화 기조는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유엔사를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규정한 뒤 “유엔사는 ‘하나의 깃발 아래’ 대한민국의 자유를 굳건히 지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국제연대의 모범”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가 처음 개최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2회 회의가 열렸다. 그 사이 한국군의 유엔사 참모부 참여가 공식 논의되기 시작했고, 독일이 새로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유엔사의 역점 목표인 ‘적정 규모화(Right Sizing)’가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와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문재인 정부는 유엔사가 독일을 회원국으로 참여시키고 6·25 전쟁 의료지원국인 덴마크가 전력 제공국으로 기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주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핵심 참모부 직위를 늘리는 데 한국이 역할을 해달라는 유엔사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 내부에선 “정부가 북한과 관계 개선 때문에 유엔사의 활발한 활동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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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경기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유엔사 연병장에서 열린 독일의 유엔군사령부 가입 기념식에서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왼쪽부터), 폴 러캐머라 유엔사사령관(주한미군 사령관), 김명수 합창의장이 유엔가입을 축하하며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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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 ‘연루’ 공포 해소하는 역할로서 유엔사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유엔사 강화를 필연적 흐름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수록 한·미의 딜레마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유엔사가 이런 딜레마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딜레마’란 한국에선 ‘방기의 공포’가, 미국에선 ‘연루의 공포’가 커지고 있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방기는 동맹이 지원을 필요로 할 때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을, 연루는 동맹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의도치 않게 분쟁에 끌려가는 것을 각각 뜻한다. 한국에서 최근 힘을 얻고 있는 자체 핵무장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한국은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확전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제공국으로서 유엔사의 역할이 강조되면 한국 입장에선 방기의 공포를 상당 부문 떨칠 수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에 발표된 ‘워싱턴 선언’을 지난해와 올해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 공동성명에서 재차 확인한 것도 이런 이유다. 워싱턴 선언은 “만약 유엔 원칙에 반한 무력공격이 한반도에서 재발한 경우 6·25 전쟁 참전국들이 다시 단결하여 즉각적으로 이에 대항할 것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첫 회의를 열며 “누구도 정전협정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재참전을 약속한 국가들이 70년간 계속 함께 하고 있을 것인지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70년이 지난 현재 해당 약속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심 섞인 시각이 있는 만큼 이를 불식하면서 방기의 공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이 유엔사로 방기의 공포를 극복한다면, 미국 등 국제사회는 유엔사를 통해 연루의 공포를 줄일 수 있다. 유사시 전력제공 외에 정전협정의 관리자로서 유엔사의 역할 때문이다. 군 고위 당국자는 “유엔사의 존재는 북한의 남침은 물론 한국의 북침 가능성도 차단한다”며 “한반도가 유엔사의 정전협정 관리 체제에 놓여있는 한 명백한 자위권 행사가 아니라면 한국의 북침 준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953년 워싱턴 선언이 ‘유엔 원칙에 반한 무력공격이 재발한 경우’로 효력 발동의 조건을 제한한 데서도 이 같은 취지가 잘 드러난다. 기술적으로 정전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어느 쪽에 의해서든 무력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유엔사가 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격자형 협력체제에서 유엔사를 기회로 삼아야



또 유엔사 역할 확대는 미국이 그간 동맹과 우방을 활용한 국제질서 운용의 방식을 ‘거점 중심(Hub and Spoke)’ 구조에서 ‘격자형(lattice-like)’ 구조’로 바꿔나가는 추세와도 맞물려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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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7함대 사령부 게양대에 펄럭이는 미국 성조기와 유엔기. 요코스카가 주일미군 기지이자 유엔사 후방기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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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각기 쌍무형 협력, 즉 부챗살 모양의 협력 관계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공동 가치를 지닌 국가들이 소다자 국제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미국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다양한 사안별로 ‘소수정예’ 협의체들로 헤쳐모일 수 있다면 북·중·러 등이 연합하는 구도에서도 더 신속하고 정교한 압박이 가능하다는 취지로도 읽힌다.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 간 안보 협의체)와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동맹) 등이 대표적인데, 유엔사도 동아시아에서 격자형 구조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이 유엔사 회원국 가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다양한 협의체에 참여해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군 안팎에선 한국이 유엔사를 동아시아의 핵심 협의체로 꾸려나가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을 지낸 박철균 큐심플러스 최고 네트워킹 책임자(CNO)는 “한국으로선 유엔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청사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로써 유엔사 회원국들을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우군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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