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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단독]안보교육이 자유민주주의 소양교육?···행안부 보조사업 편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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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자유총연맹이 진행한 ‘해외동포 MZ세대 자유민주주의 공감을 위한 모국연수’ 사업에 참가한 해외 동포 학생들이 지난 8월 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유총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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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MZ세대 공감 자유민주주의 소양교육’의 일부 프로그램이 박정희 미화와 안보관 정립을 강조하는 방향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행안부는 지난 6월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1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소양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조사업자로 6개 법인·단체가 선정돼 학술, 문화, 현장체험 등 3개 분야에서 9개 사업을 맡았다.

16일 경향신문이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유민주주의 소양교육 사업계획서와 사업 진행 상황 관련 자료를 보면, 현재 9개 사업 중 완료된 사업은 한국자유총연맹이 지난 8월 2일~8일 사이 실시한 ‘해외동포 MZ세대 자유민주주의 공감을 위한 모국연수’와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가 지난 8월15일 연 ‘광복, 자유의 MZ세대 축제’ 등 두 개이다.

자유총연맹은 34개 해외지부 회장들의 추천 등을 받아 10~20대 해외 교포 학생 32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6박7일간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전쟁기념관, 박정희대통령기념관, 파주 임진각, 한국민속촌과 경복궁, 롯데월드타워 등을 방문했다. 중간에 안보 특강도 있었다.

하지만 당초 일정에 포함됐던 민주화운동기념관 방문은 빠졌다. 자유총연맹은 휴관이라서 방문을 못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견학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보수공사로 휴관한다는 사실이 공고된 시점은 지난 6월 25일로 사업계획서 신청 마감일인 같은 달 28일보다 앞섰다.

사업계획을 바꾸거나, 다른 민주화 운동 현장을 찾을 수도 있었다. 민주화운동기념공원, 김대중평화센터, 김근태도서관, 전태일기념관 등 여러 대안이 있는데도 선택하지 않은 건, 애초에 민주화운동 관련 현장을 찾는 것에 큰 열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 공감을 위한 고국 연수에서 민주화 운동 관련 현장 방문은 사라지고, 한국의 산업 발전상을 소개하고, 북한과의 대치 상황을 강조하는 안보교육만 강조됐다.

전시물의 성격상 독재미화의 가능성도 우려된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의 한 전시실에는 박 전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전시물로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인권·민주 모두 다 좋은 말이오. 그러나 참다운 인권과 민주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에서 나옵니다. 당장 배고파 죽어가는 국민들 앞에서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학생들은 이 나라의 내일의 주인공이지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경제개발로 잘 살기 전까지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희생해도 된다거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깎아내리는 말들이 방문한 학생들의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는 박정희가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는 사진 함께 만주 군관학교 졸업 후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육사에 편입했다는 내용이 아무런 비판적 내용 없이 서술되어 있다. 이런 뉴라이트 성향의 인식을 알게 모르게 국외 교포 학생들이 받아들일 우려가 크다.

진태원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는 뉴라이트와 보수 기독교, 신자유주의라는 세 가지 이념 축이 연합해 세력을 확장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유총연맹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전하겠다면서 안보관 확립이나 개발국가 시기의 경제개발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런 흐름 속에서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국제적으로는 냉전이 끝났지만 한국에선 계속 냉전 자유주의 시각이 보수주의의 기본적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한 체제를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한 가치이고, 그것 외의 다른 민주적 가치는 상대화될 수 있고 심하면 제한할 수 있다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현 정부가 보여주는 ‘제한적 자유’의 개념은 사실 가진 자의 자유, 평등을 희생하고 평등과 대립하는 자유, 약자들은 자유의 이름 아래 불평등을 감내하고, 차별과 배제를 경험해야 하는 편파적인 자유”라면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성소수자의 성적 정체성의 자유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정하는 것이 그 한 예”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자유총연맹은 이 사업 외에도 두 개 사업을 더 맡아 참여기관 중 가장 많은 4억원을 지원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두 개 사업에서 2억9000만원, 사회안전네트워크와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대구대학교산학협력단, 자유기업원이 각각 한 개 사업을 맡아 1억8000만원, 1억6500만원, 1억3500만원, 1억3000만원을 지원받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자유총연맹의 모국 연수 사업은) 해외 교포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보여줘 자부심을 심어주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이후 사업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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