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인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지난 12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 후보 소견 발표회에 참석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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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등판했나
자민당 총재 선거 사상 최다의 입후보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입후보 조건으로 본인을 제외한 20명의 국회의원 실명 추천을 요구한다. 실명으로 특정 인물을 지원하는 순간, 추후 다른 사람이 총재가 되면 불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쉽게 추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전 최다 기록이 5명인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총재 선거는 가장 강력한 후보이면서도 유리한 입장인 총리이자 현직 총재인 기시다가 불출마했다. 총리에 마음을 둔 자민당의 정치인들이 일제히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20명의 선’은 쉽지 않았고, 입후보 의사를 가진 11명 가운데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 등 2명은 결국 후보 지원을 못했다.
반대로 20명의 추천장을 받은 9명의 정치인은 나름 지지기반이 확고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43),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61) 디지털상, 고바야시 다카유키(49) 전 경제안보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담당상, 가미카와 요코(71) 외무상, 하야시 요시마사(63)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68) 간사장, 가토 가쓰노부(68) 전 관방장관 등 9명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 방식은 독특하다. 1차 선거는 당원과 국회의원표가 절반씩 반영된다. 1차 선거에서 과반수가 없을시, 2차 선거를 다시 진행한다. 2차 선거는 국회의원 367명과 도도부현(우리나라 광역단체) 47곳의 총 414표로 결정된다. 이때 도도부현 47곳의 표는 1차 당원 선거를 반영한다. 결선 투표 2명 가운데 각 지역별로 1차 당원 선거 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에게 1표를 준다. 말하자면, 2차 선거때는 당원 표의 영향력이 확 줄어들고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보 담당상이 9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7일 열리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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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왜 고이즈미의 대세론이 나오나.
43세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과거의 자민당 분위기였으면 출마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민당 역대 총재의 나이는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50대에 총재에 오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같은 일부 예외가 있을 뿐이다. 당선 횟수도 10선 이상이 대부분이다. 경험과 경력을 중시하는 풍토인 것이다.
여기에 자민당은 예전부터 ‘파벌 정치’로 총재가 좌우됐다. 파벌은 자민당 속의 작은 정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 3년전 총재 선거는 파벌의 합종연횡이 총리를 결정하는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줬다. 당시 의원수 40~60명 정도의 파벌 3곳인 기시다파-아소파-모테기파가 기시다 후미오를 지지해 승리했다. 최대 파벌인 아베파는 다카이치를 미는 것처럼 보였지만, 기시다의 우회적인 지원도 동시에 진행했다. 당시 해설은 이렇다.
“당시는 고노다로-기시다-다카이치 3파전이었다. 여론조사에선 고노 다로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다. 당시 분위기로는 1차 선거 때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원만 있으면 과반수를 얻어 선거를 끝낼 것 같았다. 이때 아베 신조 전 총리(아베파의 수장)가 보수 강경파인 다카이치를 지원했다. 보수 강경 성향의 국회의원들은 자연스럽게 다카이치 지지로 갔고, 결국 고노 다로는 1차 선거에서 과반수 승부를 못했다. 기시다가 오히려 근소한 차이로 1위를 차지, 고노 다로는 2위에 그쳤다. 결선 투표에선 기시다가 국회의원 표로 압승했다.”(일본 주요 신문의 정치부 기자)
말하자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고노 다로의 차기 총리를 막고 싶었고, 본인의 내각 때 외무상을 지내 줄곧 친분이 깊었던 기시다를 도왔다는 것이다. 이후 아베 신조는 기시다 내각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파벌이 좌우하는 분위기에선 고이즈미와 같이 43세에 5선에 불과한데다, 경력도 환경상 밖에 한 적이 없는 정치인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심지어 고이즈미는 무파벌이다. 하지만 작년말 아베파 의원을 중심으로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졌고 이후 기시다 내각은 파벌 해산을 주도했다. 현재 명목상으론 아소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이 해체했다. 과거와 같이 파벌이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또하나는 자민당의 위기의식이다. 자민당은 딱 2차례를 제외하고 수십년간 줄곧 집권 여당이었다. 2009년 민주당에게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해 정권을 뺏긴게 가장 아픈 기억이다. 정치자금 스캔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감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자민당의 지지율은 20% 안팎까지 떨어졌고, 2009년의 재판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자민당의 국회의원 입장에선 ‘다음번 선거때 나의 득표에 도움이 될 자민당의 얼굴’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향수에다가 배우 못지 않은 외모, 그리고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대중에게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현재의 자민당으로선 파벌이나 각료 경험보다, 자민당의 차기 총선거 승리가 훨씬 중요하다. 일본의 차기 국회의원 선거는 10월이나 11월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누가 총리가 되든 중의원 해산을 감행하고, 이른 시기에 총선거를 치룬다는 것이다. 새로운 총리로선 국민에게 신임을 묻는 총선거를 한다는 의미가 있어, 일본에선 당연하게 여겨지는 선거 문화다.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지난 13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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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판 변수는: 이시바 예상 외 바람, 혹은 다카이치의 뒤집기?
일본에서 각각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신문인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이 같은 시점에 여론조사했다. 요미우리는 지난 14∼15일 자민당 당원(당비 납부 일본 국적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 회원) 1500명을 상대로 지지 의사를 조사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26%로 1위,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25%로 2위였고,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16%로 3위였다. 같은 기간,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자민당 지지층)에서는 이시바가 32%로 1위, 고이즈미가 24%로 2위, 다카이치가 17%로 3위였다. 요미우리신문에는 보수층의 성향이, 아사히신문에는 진보층의 성향이 더 많이 반영돼, 각각 다카이치와 이시바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아사히신문은 367명의 국회의원 대상으로도 조사했다. 국회의원은 고이즈미가 46명 지지로 1위, 고바야시가 43명으로 2위였다. 하야시 관방장관이 37명, 모테기 간사장이 34명이었다. 이시바와 다카이치는 각 30명이었다.
이시바는 일본 자민당에선 ‘가장 인기없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과거에 일본의 한 TV프로그램에서 한 패널이 ‘이시바는 경험도 많고, 대중적 지지도도 높고, TV에서 말도 잘하는데, 단지 동료 의원들과 저녁을 잘 안 먹고, 밥도 거의 안 산다. 그래서 인기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이시바로선 1차 선거에서 압도적인 대중의 득표가 필요하다. 현재 자민당 의원들은 ‘차기 국회의원 선거때 득표에 도움이 될 간판’을 원하고 있는데, 1차 투표에서 “고이즈미가 아니라, 내가 돼야 배지를 유지하기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야한다. 그래야 2차 선거때 국회의원의 표를 얻을 수 있다. 1차 선거에서 1위 고이즈미, 2위 이시바와 같은 모양새로 올라가면 역전 기회는 없다.
다카이치는 당초 추천의원 20명 모으는데도 힘겨워했는데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보수 강경 지지자들이 다시 움직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가 1차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할수만 있다면, 결선에서 대역전의 시나리오도 불가능하지 않다. 아사히신문의 국회의원 여론조사에서 고바야시 지원표는 대부분 보수 강경 성향의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너무 젊고 경험이 부족한 고이즈미’에 대한 불안감도 상존한다. 다카이치가 결선투표에서 이 2가지를 가져가면 역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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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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