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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온천 중 결국 쓰러졌다…축구선수도 못 버틴다는 이 나라 [10년째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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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신혼여행⑯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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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의 일몰 투어. 건기였지만 광활한 소금 사막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처럼 비추던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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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여행도 어떤 면에서는 꽤 닮은 구석이 있다. 늘 좋을 것 같지만, 불쑥 권태기가 찾아온다. 볼리리아에 가기 전, 우리의 여행은 시든 화초 같았다. 한 달에 한 도시를 옮기며 사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고, 우리는 어떤 풍경을 마주해도 시큰둥해져 버렸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권태를 떨쳐내야 했다. 보통은 한 도시에 머무르며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택했지만, 볼리비아에서는 한 달 동안 배낭을 들춰 메고 방방곡곡을 여행하기로 했다. 온갖 고생을 다 한 하드코어 여행이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아내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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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주로 육로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만나게 되는 버스 상태는 썩 좋지 않다. 고물버스에 실려 비포장도로를 10시간씩 이동하다 보면 길 가에 한 번쯤 차가 퍼진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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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우리는 볼리비아에 있었다. 고물 버스를 타고 악명 높은 천 길 낭떠러지 비포장도로를 건너 마침내 남미 여행의 꽃, 우유니 소금 사막(Salar de Uyuni)에 닿았다. 남미의 겨울인 6월은 소금 사막을 여행하기에 썩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고산 지대여서 해가 떨어지면 얼음장 위를 걷는 듯했다. 우유니 시내에서 현지인에게 소금 사막에 관해 물으니 ‘휴우~ 거긴 정말 춥다’는 말이 먼저 돌아왔다. 시내에 방을 잡았는데, 난방장치가 따로 없는 10달러짜리 더블룸은 마치 이글루 같았다. 코와 입에선 차가운 입김이 폴폴 나왔다. 전기장판을 들고 다닌 덕분에 얼어 죽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기내용 캐리어한쪽을 꽉 채우던 전기장판이 드디어 애물단지에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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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면적 크기의 광활한 소금 사막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여행자가 우유니를 찾는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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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면적 크기의 광활한 소금 사막을 보기 위해 전 세계 여행자가 우유니를 찾는다. 온통 새하얗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한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우리는 일몰‧일출‧데이 투어까지 신청했다(투어 요금 각 2만 원선). 1분 1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는 사막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한국인은 12~3월 우기의 우유니를 선호한다. 사막이 호수처럼 변하는 시기여서다. 지표면 위에 찰랑거릴 만큼 물이 차올라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보인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듯한 풍경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건기에 도착해 반쯤 포기하고 있던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한국인이 유독 많이 찾는다는 투어 회사 가이드는 이정표도 없는 사막 위에서 길을 찾아 물이 고인 장소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가이드의 투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사막인지 모를 새하얀 소금 사막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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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의 일몰 투어. 건기였지만 광활한 소금 사막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처럼 비추던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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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별이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사실 여행 중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양말을 세 겹이나 신었는데도 추위가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추위를 잊고자 대기하던 차 안에서 우리는 와인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취기 때문인지 그날 나는 별 아래에 서서 우주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린 왕자의 소행성이 이처럼 신비로울까. 그곳은 사납도록 차가우면서, 황량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소금 행성이었다.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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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남편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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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분지에 위치한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 하늘과 가장 가까운 수도라고 불린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겐 언덕길이 나오면 한숨부터 쉬게 만드는 도시이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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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는 세계를 돌며 한 달 살기를 이어갔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1년 3개월째가 되니 슬슬 권태가 찾아왔다. 한 달 살기 대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방식이라면 ‘여행의 권태기가 사라질까’ 싶어 내린 처방이 ‘볼리비아 배낭여행’이었다. 육로로 파라과이 국경을 넘어 페루 코앞까지 닿은 후 브라질로 빠질 때까지 한 달 동안 볼리비아 전국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수도 라파스(La Paz)는 한마디로 숨이 턱 막히는 도시였다. “라파스에서 열리는 축구 국가대항전은 보나 마나 볼리비아의 승리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여러 번 들었는데, 실체는 더 어마어마했다. 경사면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스키장 슬로프처럼 가파른 도로가 이곳저곳으로 뻗어 있었다. 그런 위태로운 길옆으로 광장이 있었는데, 노동자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고원에 살면서도 이렇게 힘껏 목소리를 내지를 수 있다니, 폐활량이 엄청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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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동쪽의 아구아스 깔리안떼스는 ‘따뜻한 물’이라는 뜻의 온천 마을이다.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얕은 강바닥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른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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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산맥 해발 3810m 지점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Lago Titicaca)도 갔다. 배가 다니는 호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소다. 이곳에서는 양말 한 짝만 갈아 신는 것도 일이었다. 산소가 부족해서 허리를 숙이는 것조차 숨에 부칠 정도였다. 고산 증세인 두통까지 달라붙었다. 우리는 평온한 호수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시간을 보내다 인근의 시장에 갔다. 호수에서 그날 잡은 송어를 레몬즙에 절여 물회처럼 먹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세비체(Ceviche)라는 요리였다. 볼리비아 음식은 차림새가 투박한 편이지만, 막상 입에 넣게 되면 감칠맛이 대단해서 계속 먹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내 취향에는 한국의 내장탕과 똑 닮은 랑가랑가(Ranga Ranga)라는 음식이었다(한국 돈으로 약 8000원).

평균 고도 400m의 도시 산타크루즈(Santa Cruz de la Sierra)에 도착하니 우유니의 혹한과 티티카카의 고산증이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대신 열대우림의 습도와 더위에 애지중지 들고 다니던 전기장판이 다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볼리비아를 떠나기 전, 온천물에 몸을 담갔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권태를 운운하며 체력에 맞지 않는 여행을 했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우리가 왜 한 달 살기를 시작했던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동비와 숙박비를 줄일 수 있고, 소비하듯 관광지를 스쳐 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이곳저곳 이동하기엔 체력이 턱없이 부족해서였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체력은 고산과 추위를 그리고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여행을 감당하기엔 무리였다. 여행의 권태가 볼리비아 배낭여행을 시작하게 했지만 결국 그 끝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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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남부에서 주로 먹는 소 내장을 이용한 국물 요리 랑가랑가. 한국의 내장탕과 비슷한 맛으로 원기 회복에 좋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음식이다. 사진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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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한 달 여행

비행시간 : 24시간 이상(페루나 브라질로 입국 후 육로로 이동, 볼리비아 비자 필요)

날씨 : 우유니 소금사막이 목적이라면 겨울(6~8월)은 피할 것!

언어 : 스페인어

물가 : 남미에서 가장 저렴한 편으로 장기 여행자가 많음

■ 여행작각 부부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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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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