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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무너지는 사계절, 기후위기 대응 계획 수립을[기고/정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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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사계절이 자랑이던 한국의 기후는 더 이상 없다. 우리가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는 것은 달력의 날짜를 볼 때도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워지는 날씨를 느낄 때나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의 색이 바뀌었을 때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을이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달력밖에 없다. 결국 달력의 숫자로 계절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 중 늘어나는 이산화탄소 농도로 인해 기후가 변하는 중이기에 우리가 아는 가을은 이제 없다. 그리고 당장 탄소 중립을 달성해 더 이상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수십 년 동안은 기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마치 끊는 냄비 속의 물처럼 지구의 바다가 데워져 있기 때문이다. 지구를 데우는 이산화탄소를 없애더라도 바다로 인해 대기는 뜨거워진다. 즉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를 지금 당장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러면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래서 속도가 느리더라도 기후변화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온실가스를 줄이는 탄소 중립과 같은 기후 완화 정책이 필요한 것이며 지금 당장 겪고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후 적응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한국의 탄소중립녹생성장 기본법에서는 완화와 적응을 똑같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비해 적응은 대중들의 인식에서 멀어져 있다. 하지만 이번 추석의 폭염 경보, 지난여름 집중호우와 홍수에서 알 수 있듯이 이상 기후 피해를 고려해 보면 이제 우리 모두가 기후변화를 위기의 요인으로 정확히 인지하고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국가는 이제 좀 더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과거처럼 외세의 위협이나 테러가 아니라 이제는 기후변화의 피해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대응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실효성 있고 지속 가능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넘어 국가 ‘기후위기 대응 기본계획’의 수립이 필요하다. 국가 전력수급기본계획처럼 장기적인 관점으로 5년, 10년, 100년 등 가까운 미래에서 먼 미래까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국내외 기후변화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틀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후위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의 변화 또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기본계획에는 기후변화 감시, 예측, 완화, 적응, 영향평가 등의 모든 분야가 유기적, 체계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본계획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국가 수준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지금도 다양한 정부 부처에서 각 부처의 성격에 맞는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제는 국가 수준에서 하나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영향 범위는 모든 분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데 우리의 대응 체계는 여전히 칸막이를 치고 있으면 안 된다.

지금의 상황은 이렇다. 온도가 올라가는, 빙하가 녹아내리는, 종 다양성이 무너지는 속도는 KTX인데 우리의 대응은 거북이걸음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지 못해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국가는 더 강력하고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기후위기 대응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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