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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김병수의마음치유] 우울증과 정상적인 우울의 구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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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대부분 식욕과 체중에 변화 생겨

마음의 감기 아닌 골절상… 방치는 금물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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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문제 중에는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꽤 많다. 억지로 헤집고 들어가지 않아도 시간은 상처를 치유해준다. 마음이 아프다고 해도 치료가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사례도 진료하다 보면 종종 만난다. 인간과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실존적 고통이 그렇다.

살다 보면 누구나 우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죽음, 직장에서의 실패 등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이때 느끼는 우울감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거지?”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끔씩은 아무 이유 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이런 기분은 대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없어진다. 기분이 저조해졌어도 기쁨과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데 우울증에서 느껴지는 우울감은 정상적인 그것과 다르다. 부정적 감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약해지지 않는다. ‘기운을 내거나’ ‘기분을 밝게 하려고’ 발버둥 쳐도 쉬이 벗어나기 어렵다. 컬러이던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피로가 쌓이면 의욕이 떨어지지만, “몸이 무거워서 꼼짝도 못 하겠다”고 우울증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그보다 훨씬 심하다.

우울증 환자는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긴다. 주변 사람에게 자신이 폐만 끼친다고 믿는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 지은 것처럼 느낀다. 심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정상적인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과도한 자기 비난에 시달리진 않는다.

인지 기능 저하는 병리적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주의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생각과 행동이 느려지는 것도 우울증의 특징이다. 무난하게 해내던 일도 꾸역꾸역 억지로 하게 되고 동기 저하 때문에 끝맺음을 못한다.

우울증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신체 신호는 식욕과 체중의 변화다. 먹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고 맛난 음식을 먹어도 맛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살이 빠지면서 기력도 약해진다. 이와는 반대로 유독 탄수화물이나 단 음식이 당기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고 체중이 불었다는 환자도 있다.

불면증이 생기기도 하고, 거꾸로 잠이 너무 많아지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깊은 수면의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에 평소처럼 자도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다. 가족이 보기엔 잘 잔 것같아 보여도 우울증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한 잠도 못 자고 밤새 사나운 꿈에 시달렸다”며 괴로워한다.

이런 증상들이 상당 기간 (진단 기준은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직장, 학교, 대인관계에서 활동이나 기능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을 때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심한 경우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결근을 하거나 친구조차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함께 고통에 빠진다. 아무리 우울한 기분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위와 같은 동반 증상들이 뚜렷하지 않다면, 그런 상태를 병적이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일주일 만에 안 낫는다. 침대에 누워서 푹 쉬면 저절로 좋아지는 병이 아니다. 위로와 응원만으로 완치되지 않는다. 우울증은 감기보단 골절상에 가깝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얼음찜질만 잘 하면 전처럼 뛰어 다닐 수 있게 될 거야”라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울증도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된다. 제대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악화되고 나중에 재발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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