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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광화문에서/이유종]국민연금 기금고갈 늦추려면, 운용인력부터 제대로 채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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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약 30%를 보유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내 ‘원 부시 포디움’ 빌딩. 이달 초 이곳에 뉴욕과 런던, 싱가포르에 이어 네 번째 해외 투자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소장을 포함한 기금 운용인력은 모두 4명. 이들은 잠재력이 큰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골라 직접 투자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김태현 공단 이사장은 개소식에서 “기금 수익률을 제고해 연금 개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올해 6월 말 기준 운용 규모가 1147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많게 설계돼 어느 시점이 지나면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익률을 끌어올리면 그만큼 국민들이 수혜를 보면서 고갈 시점을 늦출 수 있다.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면 고갈 시점은 5년 늦춰진다. 현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기금은 2041년 1882조 원으로 정점에 달하고 이후 줄어들게 된다. 앞으로 17년간 기금 735조 원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 기간이 기금 운용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쌓이는 반면에 돈을 굴릴 사람은 부족하다. 기금운용본부 운용직 정원은 지난해 말 기준 365명인데 2018년부터 한 번도 정원을 채운 적이 없다. 사실 인력을 채우고 싶지 않아 안 채우는 게 아니다. 사무실 소재지가 지방(전북 전주시)이라 몸값이 비싼 금융인들에겐 선호도가 크게 떨어진다. 매년 운용인력 20, 30명이 퇴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봉도 업계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사무실을 서울로 옮기고 급여를 민간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지역의 반발과 형평성 논란 등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해외사무소 운용인력을 더 늘리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해외사무소의 경우 지리적 요인에서 비교우위가 있다. 정부 내부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해외 전문인력을 201명까지 늘리면 인건비 1137억 원이 늘어난다. 반면 기금 수익률 상승 등으로 최대 1조7000억 원의 추가 수익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사무소 정원은 수년째 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규모가 작은 편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사무소에 10명가량 근무하는데 네덜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등의 연기금은 많게는 50∼90명에 달한다.

인력 1인당 기금 운용규모도 줄여야 한다. 주식 투자에서 높은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내려면 성장 잠재력이 큰 기업을 최대한 꼼꼼하게 조사하고 발굴해야 한다. 국민연금 운용인력은 1인당 운용 규모가 3조 원을 넘지만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공사(APG) 등 해외 연기금의 1인당 운영규모는 수천억 원 수준이다. 투자 대상을 신중하고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만큼 성과 역시 더 좋을 수밖에 없다.

공단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의 경우 2006년경부터 다양한 대체자산에 투자해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장기 수익률이 연 10%를 웃돈다. 국민연금은 장기 운용목표가 없고 정해진 자산군만 투자할 수 있어 시장 변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연금개혁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제라도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투자 체질을 개선해 다시 도약해야 할 때다.

이유종 정책사회부 차장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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