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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삐삐 폭탄’에 2800여명 사상… “이스라엘, 무차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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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시리아 수천개 동시 폭발

최소 12명 숨지고 300명 중태

이스라엘 침묵… 중동 전면전 위기

헤즈볼라, 이 진지에 로켓 공격

동아일보

식료품 가게서 ‘펑’… 시민들 혼비백산 17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식료품점에서 한 고객의 가방에서 폭발이 발생해 인근 시민들이 쓰러지거나 귀를 막고 있다. 이날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주로 쓰는 무선 호출기 수천 개가 동시에 폭발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진 출처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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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親)이란,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전역과 인근 시리아에서 17일(현지 시간) ‘무선호출기(삐삐)’ 수천 개가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이로 인해 최소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쳤다고 CNN 등이 전했다. 약 300명의 부상자가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 또한 “폭발 몇 분 전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전화해 ‘곧 작전 수행 예정’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미 일각에서는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준비하던 이스라엘이 사전 공작 차원에서 무선호출기에 폭발물을 심었다가 이것이 들킬 위기에 몰리자 터뜨렸다는 가설도 제기한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보복을 천명해 양측의 전면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7일 오후 3시 30분경부터 1시간가량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티레와 시돈, 동부 베까, 서부 헤르멜 등은 물론이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무선호출기 폭발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부상자는 헤즈볼라 조직원이며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대사도 부상을 입었다. 시리아에서도 최소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헤즈볼라는 올 2월 이스라엘의 위치 추적, 도청, 해킹 등을 우려해 구성원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하고 무선호출기 등을 쓰라”고 지시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뒤 하마스를 지지하며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벌여 왔다. 헤즈볼라가 ‘사이버 강국’ 이스라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구시대 유물인 ‘무선호출기’를 썼지만 이로 인한 공격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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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로 파괴된 한 호출기 잔해에 제조사인 대만 통신기업 ‘골드아폴로’가 적혀 있다. 사진 출처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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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올 들어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를 대만 통신기업 ‘골드아폴로’로부터 구입했다. 레바논 소식통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생산’ 단계에서 폭발물을 심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선호출기 유통 과정 중 폭발물과 악성 코드가 삽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 사태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대립했지만 “하마스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헤즈볼라와의 확전까지는 바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규모 도발로 이 같은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 폭발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국경 너머 이스라엘 포병 진지에 로켓을 쐈다고 보도했다.

삐삐 진동에 버튼 누르자 동시다발 ‘펑’… “모사드가 폭탄 심어”


[레바논 ‘삐삐’ 동시폭발 테러]
레바논 곳곳 폭탄테러 아비규환… 손 잘리고 눈 다친 부상자 속출
헤즈볼라, 대만업체에 삐삐 주문… 대만업체 “헝가리 기업이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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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 시간) 레바논 남부 시돈에서 무선 호출기 폭발 테러로 피를 흘리는 남성이 붕대를 감은 채 긴급 이송되고 있다(왼쪽 사진).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같은 폭발로 부상을 입은 남성이 피가 흥건한 길바닥에 앉아 있다(가운데 사진). 현지 소셜미디어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부상을 입은 남성이 피를 흘리며 차량에 기댄 사진도 올라왔다. 시돈=AP 뉴시스·사진 출처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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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3시 반경(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한 식료품 가게에서 과일을 고르던 남성이 돌연 ‘펑’ 하는 강한 폭발음과 함께 고꾸라졌다. 놀란 주변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달아났다. 폭발물이 들어 있던 남성의 가방에선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날 1시간가량 수천 개의 무선호출기(삐삐)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며 레바논은 사실상 아비규환이 됐다. 한 목격자는 CNN에 “부상자들이 도로에 흩어져 누워 있었다. ‘좀비 도시’ 같았다”고 전했다. 도로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손 등 신체 일부가 사라지거나 엉덩이와 다리에 구멍이 뚫린 부상자도 목격됐다.

환자들이 몰려들면서 일부 병원은 병상 부족으로 주차장에 매트리스를 펼치고 응급 치료를 했다. 눈을 다친 환자가 많지만 안과 의사가 매우 부족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오랜 내전, 경제난으로 의료 인프라가 낙후된 레바논 상황을 고려할 때 많은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진동 일으켜 버튼 누를 때 폭발”

“폭발 직전 무선호출기가 수 초간 신호음을 내도록 만드는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이번 무선호출기 폭발에 대한 AP통신의 원인 분석이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배터리 옆에 28∼56g의 폭발물과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가 내장돼 폭발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대부분 대만 통신기업인 골드아폴로의 ‘AR924’ 모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선호출기는 오류로 진동이 발생할 때 사용자가 진동을 멈추기 위해 버튼을 누르며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전했다.

BBC는 분쟁과 테러가 빈번한 레바논에서도 이번 사태의 규모와 성격은 유례없는 일이라며 레바논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고 전했다. 곳곳의 병원에서는 몰려드는 환자에 비해 의사가 부족해 약사, 치과의사, 수의사 등도 치료에 동원됐다. 휴대전화도 터질지 모른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헤즈볼라가 정확히 언제, 몇 개의 무선호출기를 주문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NYT는 3000개, 로이터통신은 5000개를 구매했다고 전했다. 또 골드아폴로 측은 18일 “이 기기의 생산 및 판매는 헝가리 회사인 ‘BAC’가 맡았다”며 대만 내 제조설을 부인했다. AP통신은 이 회사가 유령회사(a shell company)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NYT는 폭발의 크기와 강도로 미루어 배터리만 폭발한 게 아니라 호출기의 다른 부품 또한 폭발했을 가능성도 있음을 제기했다. 배터리에 사용된 건전지는 일반 ‘AAA’ 건전지라고 레바논 당국이 밝혔다.

● 폭발물 설치 방법에 대한 진단은 엇갈려

폭발물의 삽입 시기와 방법에 대한 진단은 엇갈린다. 레바논 고위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무선호출기 ‘생산 단계’에서 기기를 개조해 폭발물질이 들어 있는 부품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감지 장비로도 이 폭발물을 탐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도 했다.

미국 보안회사 에라타시큐리티의 로버트 그레이엄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제조업체에서 호출기를 배송하는 도중에 가로채서 악성 코드와 함께 폭발물을 내부에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데이비드 케네디 전 미 국가안보국(NSA) 정보 분석가는 CNN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내부에 침투해 일부 조직원의 배반을 유도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원격 해킹으로 호출기를 과열시켜 배터리 폭발을 일으켰다고 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 그는 “헤즈볼라 내부의 (일부) 요원들이 작전의 핵심 목표였을 것”이라고 했다.

● 헤즈볼라-이스라엘 전면전 우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또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동시 보복’도 강조했다.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의 나세르 카나니 외교부 대변인도 “이번 폭발은 시오니스트 단체(이스라엘)와 그 용병 요원들의 복잡한 작전의 연속”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는 “계속되는 긴장에도 지금까지 양측이 적대 행위를 억제했지만 헤즈볼라가 이미 폭발에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물러서지 않을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17일 “(헤즈볼라와의 충돌로 대피해 있는) 북부 주민을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것 또한 전쟁 목표”라며 헤즈볼라와의 전쟁이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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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옛 트위터 화면 캡처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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