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부터 제조업, 식음료업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외국계 기업의 ‘조세(법인세) 회피’ 행위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천하람(개혁신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신고액 기준 매출 5조원을 넘긴 외국 법인 10곳 중 4곳꼴로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매출 5조원 초과 기업을 분석한 결과 국내 법인 113곳 중 법인세를 내지 않은 회사는 15곳(13%)이었다. 반면 외국 법인(본사가 외국)은 16곳 중 7곳(44%)이 법인세를 내지 않았다. 회사당 법인세 평균 부담액도 내국 법인은 2630억원이지만, 외국 법인은 140억원에 그쳤다.
박경민 기자 |
구체적으로 IT 기업 중에선 1조3690억원의 매출을 올린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가 330억원, 매출 1조6160억원의 소니코리아가 60억원을 법인세로 냈다. 제조업 중에선 7조5350억원을 번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910억원, 5조7890억원을 번 BMW코리아가 660억원을 각각 냈다. 서비스업 중에선 9940억원 번 한국맥도날드, 2조100억원을 번 나이키코리아가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애플코리아처럼 매출원가를 올려잡는 등 영업이익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동원됐다. 구글코리아는 한국 수익의 대부분(앱 마켓인 앱 결제)을 싱가포르에 있는 ‘구글아시아퍼시픽’ 몫으로 회계 처리해 구글코리아 매출에서 제외했다. 구글의 국내 매출은 수조원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2022년 매출로 3449억원을 신고하고, 법인세는 169억원을 내는 데 그쳤다. 한국맥도날드는 매년 순 매출의 5%, 국내에서 신규 매장을 열 때마다 4만5000달러를 미국 본사에 로열티로 지급하는 식으로 법인세 납부를 피했다.
현행 법인세법에 따르면 국세청은 외국계 기업의 경우 각 국가와 조세 조약에 따라 한국에서 올린 소득(순이익)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다. 외국계 기업이 한국 법인에서 거둔 이익의 상당 부분을 매출원가를 부풀리거나, 로열티를 내는 식으로 본사로 넘기면 그만큼 과세표준이 작아진다. 국내에서 내야 할 법인세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탈세에 가까운 절세’란 지적이 나온다.
어렵사리 법인세를 매기더라도 불복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기업이 국세청을 상대로 낸 조세 행정소송 1494건 중 국세청이 패소한 사건 135건(9%)이었다. 반면 외국계 기업이 낸 소송 42건 중 패소한 경우는 8건(19%)을 기록했다. 그나마 2021년 패소율(44%)에 비해 낮아졌다. 외국계 기업은 지난해 1550억원 규모 불복 소송을 내 1010억원(65.5%)을 돌려받았다.
외국계 기업의 법인세 회피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정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뜩이나 ‘세수(국세 수입) 펑크’의 주범인 법인세 징수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법인세 수입은 1년 전보다 15조5000억원 줄었다. 천하람 의원은 “외국계 기업이 아낀 세금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거나 추가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는 국내 기업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외국계 기업의 조세 회피를 엄단하고, 과세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외국계 기업은 법인세 납부에 위법 행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애플코리아 측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조세 회피 의혹에 대해 “애플은 한국 법을 깊이 존중하며, 세부 법규를 충실히 준수해 세금을 납부해왔다”며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지난 7월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과세 자료 제출에 소극적인 일부 다국적 기업을 겨냥해 “해외에 자료가 있다는 사유 등으로 자료 제출을 고의로 지연하거나 조사를 방해하는 행위에도 세법 개정 추진 등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다국적 기업이 세무조사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기업의 '꼼수 절세'는 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법인세를 회피하는 건 만국 공통이라서다. 해외에선 대응을 위한 과세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세(稅) 도입 논의가 대표적이다. 디지털세는 IT 기업이 이익을 얻으면 서버가 어디에 있든 수익을 낸 국가에서 세금을 물도록 하는 개념의 조세다. 연간 매출 200억 유로 이상, 이익률 10% 이상인 기업이 통상 이익률(10%)을 넘는 초과이익의 25%에 대한 세금을 해당 시장이 소재한 국가에 납부하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5년 디지털세 도입을 목표로 논의해왔다. 주요 20개국(G20)과 지난해 디지털세 성명문을 발표했고, 지난달엔 디지털세 관련 다자 조약문 서명을 위한 회람을 시작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7월 브라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디지털세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 상당수가 있는 미국이 미온적이다.
강금윤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디지털세 도입 논의는 빅 테크 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최근 제조업을 포함한 일정 규모 이상 다국적 기업에 적용하는 것으로 확대됐다”며 “한국 기업도 (디지털세 부과에) 예외가 아닌 만큼 다른 국가와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 과세 분쟁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