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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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가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 파문을 낳고 있다. 22대 총선을 한달여 남겨둔 올해 2월 말 김영선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공천과 관련해 김 여사와 누군가가 주고받은 문자 대화 갈무리 사진을 개혁신당 지도부에 내보이며 비례대표 상위 순번 배정을 타진한 사실이 19일 언론 보도와 관련자들 진술로 확인되면서다. 야권은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사안”이라며 ‘김건희 특검’ 수용을 압박했다.
한겨레가 이날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선거 자문 명태균씨와 함께 지난 2월29일 경남 하동 칠불사에서 개혁신당 이준석·천하람 의원 등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의원은 김 여사가 등장하는 텔레그램 갈무리 사진을 보여주며 개혁신당 비례대표 공천 가능성을 타진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한겨레에 “김 전 의원이 ‘억울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새벽에 칠불사로 내려갔더니, 김 전 의원이 (텔레그램 대화) 캡처 화면을 보여줬다. 1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다 올라왔다”고 말했다.
당시 만남에 대해 뉴스토마토는 이날 “비례대표 공천을 전제로 김 전 의원의 국민의힘 탈당과 개혁신당 입당,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폭로가 논의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 내용은 한겨레의 취재 결과와도 대체로 일치한다. 상황을 잘 아는 개혁신당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의원이 보여준 문자에 대해 “김 여사가 ‘의원님, 언제까지 다른 지역구로 간다고 보도자료를 내시라’는 내용이었다”며 “김 전 의원이 그걸 폭로할까 망설이다가 끝내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겨레에 말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지역구인 경남 창원의창을 떠나 민주당 현역 의원이 있는 김해갑 출마를 선언했으나 국민의힘이 발표한 경선 후보군에 들지 못했다. 당시 상황과 관련해 지난 7월 한겨레와 만난 김 전 의원은 ‘김 여사가 김해로 지역구를 옮긴다는 보도자료를 내라고 했느냐’는 물음에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며 “(당시) 김 여사의 얘기도 안 통했다”고 말한 바 있다.
종합하면 김 전 의원은 자신의 공천 탈락이 확실시되자 경쟁 정당인 개혁신당에 자신의 지역구 이동과 관련해 김 여사와 주고받은 문자 대화 갈무리본을 제시하며 공천을 받기 위한 거래를 시도한 게 된다. 뉴스토마토는 이와 관련해 칠불사에서 이 의원이 떠난 뒤 같은 당 천하람 의원이 2~3일 더 머물며 김 여사의 공천 개입 폭로와 관련한 기자회견문 초안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김 전 의원은 김종인 당시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찾아가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출연해 “김영선 의원이 처음에는 (비례대표) 1번을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3번을 달라(고 해서), 그건 거론할 가치가 없으니까 상대를 안 해버렸다”고 말했다.
공천 개입 의혹의 또 다른 축은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텃밭인 경남 창원의창에 공천받은 과정과 관련돼 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비례대표를 두차례나 지내고 경기 고양일산에서 재선을 한 4선 경력의 수도권 중진이었다. 누가 봐도 석연찮은 공천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도 지역에선 ‘윗선 개입설’이 파다했다. 김 전 의원 스스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자 부부와의 친분을 공공연히 과시한 것도 이런 소문이 퍼지는 데 일조했다.
이와 관련해 뉴스토마토는 이날 김 전 의원 측근인 명씨가 ‘윤 대통령 내외로부터 김영선 전 의원이 창원의창 공천을 약속받았다’고 말하는 녹취록을 인용해 ‘다른 후보가 공천될 뻔한 상황이었는데 김건희 여사가 나서 김 전 의원으로 바꾼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윤상현 의원은 한겨레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서 여성을 공천했고, 김 전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60%대 지지율을 보이고 경쟁력이 있어서 공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면 김 전 의원의 지역구 공천과 관련해 김 여사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된 정황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제는 당사자인 김 전 의원이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사실을 확인해주거나 김 여사와의 대화 문자나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명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공천 개입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명씨도 이날 법률 대리인을 통해 보도자료를 내어 김 여사와 오간 텔레그램 대화의 상대는 김 전 의원이 아니라 자신이며, 김 여사한테 자신이 김 전 의원 전략공천을 요구했으나 “나는 힘이 없고, 가더라도 경선해야 된다”는 답을 김 여사로부터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야권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김건희 특검’을 압박할 중대한 모멘텀이 마련됐다고 본다. 실제 야당은 관련 보도가 나오자마자 특검 수용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보도가 사실이라면 명백한 범죄”라며 “김건희 여사가 가야 할 곳은 마포대교나 체코가 아닌 특검 조사실”이라고 했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사안을 ‘명태균 게이트’라 명명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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