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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과학계에 떨어진 거대한 유성[이기진의 만만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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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기진 교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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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을 연구하는 옆 연구실 이론물리학자 김 교수를 복도에서 만났다. “요즘 어때요?” “뭐, 과학계에 유성이 떨어진 거죠.” 얼마 전 연구재단 개인기초연구사업인 중견연구과제 발표가 있었다. 내 주위의 교수들만 봐도 열에 아홉이 연구비를 받지 못했다. 나 역시 탈락했다. 복도에서 서로 걱정의 말들을 나누지만 연구비 삭감에 따른 후폭풍을 두 명의 평범한 물리학자가 어찌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일을 해 나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니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을 되뇔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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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비가 대폭 삭감되자,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앞으로 악순환도 불가피하다. 연구비를 받지 못하면 연구 성과를 낼 수 없고, 연구 성과가 없으면 또 연구비를 받지 못하는 부정적인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구의 지속성이 훼손되면 그것을 복구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 기초과학의 경우, 어느 특정 분야가 쇠퇴하면 그것을 되돌리는 데는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엔 이런 ‘연구의 연속성’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서, 다른 분야는 희생하더라도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해 온 것 아닐까? 그 결과 지금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고.

한때 정보통신부와 연구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2008년 2월 28일, 정권이 바뀌면서 정보통신부가 폐지되더니, 담당 부서와 연구과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연구원 13명을 이끌며 연구하고 있었는데,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없었다. 그 당시 박사급 연구원의 인건비와 학생들 인건비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힘들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다행히 한 명도 내쫓지 않고 기적같이 그 빙하기를 함께 넘겼다.

6500만 년 전, 지구와 대형 유성 간의 충돌은 대멸종을 일으켰다. 우주의 대형 천체가 중력의 영향으로 인해 지구와 충돌했고, 유성 충돌은 지구의 생태계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대량의 먼지와 입자들이 대기 중으로 뿌려졌고, 태양 빛이 차단돼 지구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빙하기가 찾아왔다. 기후 변화는 식물과 동물의 생존에 위협을 가했다. 특히 이 영향으로 1000종이 넘는 공룡을 포함해 지구 생물종의 75%가 멸종했다. 다섯 번째 대멸종이었다.

지구의 대기권으로 진입하여 밝은 빛을 내면서 떨어지는 작은 유성을 별똥별이라고도 한다. 크기가 커서 다 타지 않은 유성은 지표면에 도달해 운석이 된다. 별똥별이 대기권으로 떨어지면 압축된 대기가 에너지를 받아 빛을 낸다. 별똥별을 관측할 때 자주 보이는 시간대는 새벽이다. 어렸을 때 여름밤 외갓집 시골 깜깜한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하나둘 셌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밤하늘을 보며 우주 너머까지 상상하는 물리학자를 꿈꿨다.

최근 별똥별 같은 소식이 내 귀에 들렸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기초연구사업 예산을 늘리고, 연구비가 일괄 삭감돼 논란이 됐던 기초연구 계속과제의 경우 삭감 이전 수준으로 복구된다고 말이다. 시기를 놓쳐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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