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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스라엘, 유령회사 세워 삐삐 폭탄 제작… 유일 고객이 헤즈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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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휴대전화 금지前 설립

폭발성 물질 함유 별도 배터리 넣어”

“이 8200부대 폭발작전 핵심 역할

삐삐 폭탄 계획단계부터 관여해”

《“삐삐-무전기 폭탄 제조업체, 이스라엘의 유령회사였다”

17, 18일(현지 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휴대용 무전기 수천 대가 연이어 폭발하며 최소 37명이 숨졌고 3100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은 관련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레바논 정부, 무장단체 헤즈볼라, 외신들은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폭발물이 설치된 무선호출기 제조를 위해 유령 회사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또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군 최정예 첩보부대인 ‘8200부대’가 이번 폭발 사태에 개입한 정황도 나타났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삐삐 폭탄’ 희생자 장례식 18일(현지 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17, 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삐삐)와 휴대용 무전기 폭발로 숨진 희생자들의 관 앞에서 경례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이번에 폭발한 무선호출기의 제조사는 이스라엘이 세운 유령 회사”라고 보도하는 등 이스라엘이 이번 폭발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베이루트=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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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 시간)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폭발한 무선호출기(삐삐)의 제조사가 이스라엘이 설립한 유령 회사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이번 폭발 사태의 배후가 이스라엘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공격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 미국 국가안보국(NSA),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와 견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스라엘군의 엘리트 사이버 첩보부대인 ‘8200부대’가 이번 폭발 사태를 기획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이스라엘, 무선호출기 제작 위해 유령 회사 세워”

18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정보당국 관계자들을 인용해 “레바논에서 폭발한 무선호출기들은 이스라엘이 직접 생산해 헤즈볼라에 제공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에 폭발한 무선호출기는 대만 통신 기업 골드아폴로의 ‘AR924’ 모델이지만 이를 제조한 건 헝가리의 ‘BAC컨설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BAC컨설팅은 이스라엘이 설립한 유령 회사(shell company)다. 이스라엘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BAC컨설팅은 무선호출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진짜 신원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고 NYT에 전했다. 또 이런 유령 회사가 두 개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바치 졸탄 헝가리 정부 대변인은 “해당 회사는 헝가리에 제조·운영 시설이 없는 무역 중개업체”라고 밝혔다.

특히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지도자가 올 2월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하기 이전부터 이스라엘은 무선호출기를 생산할 유령 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BAC의 유일한 고객은 헤즈볼라”라며 “이들을 위해 별도로 생산된 배터리에는 폭발성 물질인 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PETN)가 함유돼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 관계자는 17일 헤즈볼라 고위 지도부가 보낸 것처럼 보이는 아랍어 메시지를 무선호출기로 보냈고, 해당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음이 울리면서 폭발이 시작됐다고 NYT에 전했다.

● ‘삐삐 폭발’ 배후로 주목받는 8200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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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통신은 18일 서방 보안 소식통을 인용해 “8200부대가 이번 작전의 개발 단계부터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1952년 설립된 8200부대는 이스라엘군에서 암호 해독과 첩보 신호 수집 등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분야를 담당하는 사이버 첩보부대다. 과학과 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16∼18세 인재들을 영입해 최소 3년간 군 복무를 시킨다. 정확한 병력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스라엘군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일 부대”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8200부대가 이번 작전에 1년 넘게 관여했으며, (무선호출기의) 제조 공정 내에 폭발성 물질을 삽입하는 방법을 시험하는 기술 분야에도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번 폭발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

8200부대는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뒤 가자지구 내 하마스 표적 추적을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2010년 이란의 핵 원심분리기를 무력화시킨 컴퓨터 바이러스 ‘스턱스넷’ 공격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번 작전의 취지를 둘러싸고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한 아랍권의 정보당국 관계자는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며 “이스라엘로서는 향후 작전 개시가 어려워질 것을 감안해 작전을 단행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전했다. 전직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 고위 요원인 대니 야톰은 WP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통신선조차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헤즈볼라 내부에 패닉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위한 작전이었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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