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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런 인연이 있었다니” 한국·체코, 놀라운 첫 만남 주목 [필동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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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9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체코를 방문중이다. 지난 7월 체코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이참에 체코와의 ‘원전 동맹’을 강화하게 됐다. 체코가 우리 원전 기술력을 높이 산 것이지만 양국은 과거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고난을 겪은 ‘동병상련’ 지기(知己)다.

매일경제

윤석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성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한·체코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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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체코 간 첫 만남도 둘다 식민지였던 때였다. 우리가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는데 체코인들이 무기를 제공해주면서였다. 일명 ‘체코군단’에 속한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제국군에 합류해 편제됐다. 하지만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볼셰비키가 독일과 조약(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고 전장(戰場)에서 철수하자 체코군단은 난처해졌다. 영국, 프랑스와 함께 러시아가 몸담은 연합국 편에 서서 동맹국(독일·오스트리아)과 싸워 독립을 쟁취하려는 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독일·오스트리아와 화해한 마당에 체코군단의 해체를 요구했고, 홀로 동맹국들을 물리치고 유럽에 갈 수 없었던 체코군단은 대장정을 결정했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한 뒤 배편으로 유럽까지 가는 거의 지구 한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볼셰비키 적군(赤軍)의 견제 속에 1918년 7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체코군단은 그곳에서 넉달 후에 1차 대전 종전과 그에 따른 조국의 독립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들고 간 무기는 이제 쓸 데가 없어졌다. 마침 연해주와 중국 동북부 일대 우리 독립무장세력은 소총과 기관총, 박격포, 탄약 등 체코군단의 무기를 대거 사들였다. 체코군단은 자신들처럼 독립투쟁을 벌인 한국인들을 동정해 많은 무기를 값싸게 몰래 넘겼다. 당시 북로군정서 사령관이던 이범석은 “체코인들은 식민 통치하에서 겪었던 노예 상태를 떠올리며 우리에게 연민을 표했다”고 밝혔다. 체코군단 사령관이던 라돌라 가이다 장군은 1920년 초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면서 “유럽에 가서 (한국) 독립운동을 알리겠다. 다음에는 독립국민으로 만나자”고 말하기도 했다.

체코군단 창립자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토마시 마사리크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초대 대통령에 오른뒤 1919년 미국을 방문해 이승만과도 만났다. 이들 간에는 자유민주주의, 반소·반공주의, 친미 외교 등 비슷한 점이 많았다. 국내에는 ‘이승만과 마사리크’라는 책도 나와 있다.

체코 수도 프라하의 바츨라프 하벨 공항에 가면 표지판이 영어, 체코어와 함께 한글로 되어 있다. 미국과 유럽 공항에서 한글 간판을 볼 수 있는 곳은 프라하 공항이 유일할 것이다. 대한항공이 체코항공의 지분 44%를 인수하면서 한국어 표지판이 설치됐다고 한다. 그만큼 양국은 이미 가깝다.

윤 대통령이 100여년 전 우리 독립군과 체코군단 간 첫 인연만큼이나 좋은 성과를 얻어오길 바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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