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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이슈 미술의 세계

익숙한듯 낯선 프랑스 숨은 보석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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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릴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그랑 팔라스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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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TGV(테제베)로 단 50분. 프랑스 북부 숨은 보석들이 기다린다. '세계 최고 갑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의 고향 루베부터 프랑스 호텔 체인 아코르의 발상지 릴. 릴부터 덩케르크까지, 익숙한 듯 낯선 북프랑스 여정은 프랑스의 새로운 면모를 선사한다.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어 제4의 대도시 릴. 면적은 34.8㎢, 경기 구리시와 비슷하다. 중세 시대 릴은 플랑드르(벨기에와 프랑스 북부를 아우르는 지역)에 속했다. 릴은 9세기부터 유럽 상권을 주도했다. 17세기 태양왕 루이 14세가 릴을 정복하며 프랑스 영토로 편입됐다. 릴의 플랑드르 DNA는 여전하다. 붉은 벽돌 건물, 계단형 지붕 등 플랑드르 건축 양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특한 역사로 릴은 프랑스와 벨기에 문화가 한데 어우러졌다.

릴의 매력을 묻자 15년간 릴에 거주한 전한별 문화해설사는 "다양성이다. 여러 건축 양식이 공존하며, 대학들이 자리한 교육 도시다. 벨기에와 인접해 기차로 30분이면 브뤼셀에 닿는다. 릴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우호적이다. 따뜻함이 릴에 오래 머물게 했다"고 말했다.

도시의 심장, 그랑팔라스 광장에 서면 릴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횃불을 든 '여신의 기둥'이 오스트리아 침공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정신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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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 수영장은 16년간 보수를 거쳐 라 피신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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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라 트레이 대성당은 145년 만에 세워진 인내의 결정체다. 1854년 시작해 1999년에야 완성돼 고딕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성당의 파사드는 놀랍다. 두께가 28㎜에 불과한 110개 포르투갈 대리석 석판이 빛을 투과시켜 오후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빛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오이뇽 광장은 도시 재생 교과서로 불린다. 노후된 빈민가로 한때 '목을 베는 곳(쿠프-고르주·coupe-gorge)'으로 악명 높던 곳이 보행자들의 천국이 됐다. 1980년대부터 10년간 재개발로 옛 건물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현대화했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명소로 거듭났다.

루브르에 버금가는 보물창고, 팔레 데 보자르. 프랑스 미술계 중심축으로, 규모에서도 루브르 다음이다. 2만2000㎡ 공간에서 고전부터 현대까지 미술사 여행이 가능하다. 방문 당시 '인상주의 150주년 기념 특별전'이 한창이었다. 오르세와 협력해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 작품을 선보였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싶다면 1849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와플 명가 '메에르트'로 향하자. 마다가스카르 바닐라 크림을 채운 와플은 170년 넘게 변함없는 맛을 자랑한다. 맥주 애호가라면 '레 비에르 드 셀레스탱'의 천연 재료로 만든 맥주를 맛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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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인 덩케르크. 릴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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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또 다른 도시들이 기다린다. 릴에서 7㎞ 떨어진 크루아는 조용한 부촌이다. 과거 산업 황금기, 도시 매연을 피해 부유층이 둥지를 틀었다. '빌라 카브루아'가 단연 돋보인다. 2001년 정부가 매입한 후 13년간 복원해 일반에 공개했다. 1932년 세워진 빌라는 모더니즘 건축 대표작이다. 직물 공장주 폴 카브루아가 지었다. 건축가 로베르 말레 스티븐스의 1차 세계대전 때 파일럿 경험이 설계에 녹아들었다. 2800㎡ 규모, 60m 길이로 외관이 웅장하다. 내부는 높은 천장과 대형 창문으로 자연광을 극대화했고, 중앙난방부터 엘리베이터까지 첨단 설비를 갖췄다. 비행기 조종석을 연상케 하는 요소, 구성원별 공간 분리 등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27m 야외 수영장은 당시 파격 그 자체였다. 일상 속 스포츠 향유를 위해 건축가들은 부르주아 저택에 수영장을 도입했다. 물놀이의 즐거움이 부자들만의 특권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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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에 정부도 화답했고 루베 수영장 같은 공공시설이 탄생했다. 세월이 흘러 본래 기능을 잃은 루베 수영장은 16년간 개·보수를 거쳐 2001년 '라 피신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수영장 중앙 수로, 주변 조각상, 천장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드는 몽환적 분위기가 압권이다. 옛 샤워 부스는 예술품을 품은 전시 공간이 됐다. 2층은 직물 컬렉션과 피카소를 포함해 거장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화유산의 창조적 재활용 흐름은 계속됐다. 옛 탄광 도시 랑스에 2012년 문을 연 루브르 랑스는 파리 루브르의 첫 분관이다. 3000㎡ 규모 '시간의 갤러리'에서 기원전 400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걸작 200여 점과 조우한다. 매년 작품은 교체한다. 일본 건축사무소 사나(SANAA)가 설계한 건물은 투명성과 개방성이 돋보인다. 알루미늄 벽면은 거울처럼 관람객을 비추며 작품과 관객 사이 경계를 허문다.

릴에서 TER(테르)로 한 시간. 여정 마지막은 덩케르크. 고속 열차 예약은 필수다. 레일유럽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덩케르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도시다.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극적 탈출 현장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화 '덩케르크'로 담아냈다. 필사적 탈출 무대였던 해변은 평화로운 휴양지로 변모했다. 전쟁 상흔을 건축과 예술로 승화시킨 저력이 느껴진다.

해변 지구 '말로 레 뱅'은 건축 박물관이다. 말로 레 뱅은 한때 모래언덕에 불과했으나 한 사업가의 투자로 황금성이 됐다. 곡선의 아르누보와 기하학 패턴의 아르데코 건축이 공존하는 보고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개발된 말로 레 뱅은 두 건축 양식 전성기와 맞물려 이색 풍경을 자랑한다. 철도 개통으로 파리와 접근성이 좋아지며 인기를 얻었고, 부유층 별장 건설 붐이 일었다. 건물주들은 경쟁하듯 화려한 건물을 지었고, 건축가들 실험장이 되며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게 됐다. 역사의 흔적은 곳곳에 남았다. '프린세스 엘리자베스'호는 한때 군인 1673명을 구출한 영웅적인 증기선이었지만 지금은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취재 협조=프랑스관광청·에어프랑스·레일유럽

[릴 권효정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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