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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임종석 '통일 포기' 파문 확산…진보성향 전문가들도 "부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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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임종석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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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통일하지 말자"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남북의 체제 차이에 대한 고려 없이 한반도 통일을 최고 목표이자 과제로 설정한 '통일 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긴장과 갈등보다 평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임 전 실장의 이런 주장을 두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진보진영에 몸 담았던 전문가들도 대체로 부정적인 분위기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 규정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에 위배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이후 모든 정부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기본합의서 정신을 계승해 왔다.



北 '2국가' 헌법 개정 앞두고 '통일 포기'?



전문가들은 발언 시점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북한은 내달 7일 한국의 국회 격인최고인민회의를 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놓은 2국가론과 관련한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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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며 이같이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2월 3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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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두고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김정은이 지시한 헌법 개정 사항은 ▶한국 주적 명기 ▶통일 관련 표현 삭제 ▶영토 조항 개정 등으로 모두 '적대적 2국가론'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임 전 실장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3조에 대해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주장하면서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통일부도 정리하자"고 주장했다. 여권은 물론 야권 일각에서도 임 실장의 주장이 김정은의 '2국가 선언'과 궤를 같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자문위원을 지낸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일문제는 정세변화와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통일역량을 축적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통일 논의 자체를 하지 않고 평화만 얘기하겠다는 건 전략적이고 실효적인 접근도 아니고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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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의 모습.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기구들을 폐지했고,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분단 고착화 가능성도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기자"는 임 전 실장의 주장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통일을 폐기해 '2국가론'을 현실화할 경우 남북 주민들의 이질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북한의 대중, 대러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남측 수석대표를 지낸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은 "통일문제는 세대를 잇는 특수한 마라톤"이라며 "평화·통일을 위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가서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주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일연구원이 지난 4월 18일부터 5월 16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의식조사 2024'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52.9%로 202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젊은 세대로 이동할수록 통일 필요성은 하락하며,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46.5%만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게 통일연구원 측의 설명이다. 평화적이든 적대적이든 2국가 관계가 지속하다 보면 통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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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시민이 북한 개풍군 마을을 바라보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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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주민에 잘못된 신호 우려



한국 내의 '통일 포기' 논의가 북한 주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발신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주민들이 통일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만약 우리가 2국가론을 수용해 고착된다면, 북한의 핵·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내정간섭으로 치부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헌법의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의 북한 지역에 대한 헌법적 관할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2국가론이 굳어질 경우 한국 사회 내 좌우 진영 간 갈등과 대결이 더 격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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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지난 6월에 발간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의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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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핵무장으로 독자의 길을 가겠다는 북한에 대해 평화론을 꺼내 든 건 핍박받는 북한 주민과 한국의 안보를 포기하겠단 얘기"라며 "진보 진영은 '통일 포기'. '평화론'과 같은 잘못된 담론이 아니라 교류협력은 이제 무용하다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분명히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현 상황에선 남북 대화 자체도 쉽지 않은 만큼 통일 논의를 중장기 과제로 유보해 놓고 일단은 평화 공존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 면에선 2국가론 자체를 터부시할게 아니라 한반도 위기와 긴장을 낮추는 측면에서 2국가론의 가능성을 학술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엔 당연히 그 전제는 임 전 실장의 주장처럼 '통일 포기'가 되선 곤란하다는 의견이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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