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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청주 여관 화재 사망 3명…달에 30만원 ‘달방’ 살던 일용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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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1일 새벽 일용 노동자 등 3명이 숨진 청주시 남주동 한 여관 내부. 충북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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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성도 모르고 그냥 여기서 사는 것만 알아요. 일 있으면 일하고 나머진 쉬고… 술·라면 같은 것 사러 나올 때만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 그림자처럼 살던 사람들인데….”



2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한 여관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이다. 이 주민은 “새벽에 비가 많이 내려 잠이 깼는데 타는 냄새가 났다. 밖에 나와 보니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어 큰일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전날 새벽 1시44분께 이 여관에서 불이 났다. 충북소방본부는 6분 뒤 현장에 도착해 진화에 나섰다. 투숙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여관 내부 수색에 나서 새벽 2시11분께 2층 복도에서 ㄱ(60)씨, 3분 뒤 2층 객실에서 ㄴ(58)씨, 14분 뒤 3층 객실에서 ㄷ(80)씨를 발견했다. 이들 모두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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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소방본부 소방관들이 지난 21일 새벽 청주시 남주동 한 여관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충북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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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소방본부와 경찰은 주 계단 2층에서 신문지를 이용해 화분에 불을 붙인 흔적을 확인하고 방화를 추정했다. 경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분석해 주변을 배회하던 김아무개(48)씨를 이날 새벽 4시40분께 현주건조물 방화 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김씨는 이 여관에 머물렀던 장기 투숙객으로, 여관 주인과 여관비 결제 여부를 놓고 다투다 20일 퇴실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재철 청주상당경찰서장은 “김씨가 불을 지른 부분에 대해선 자백했다”며 “월세 문제로 주인과 다툰 뒤 이에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는 얘기가 나와 조사 중이다. 불을 지른 과정·원인 등은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불이 난 곳은 청주시 남주동으로 청주의 옛 도심이다. 청주 중앙공원, 한복거리와 청주 육거리시장 사이로 30년 이상 된 여관·건물 등이 즐비하다. 이 여관 골목 주변에도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주변 낡은 여관은 6개월에서 1년 이상 장기 투숙하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대부분 일용 노동이나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다. 다달이 방세를 내고 생활한다고 해 ‘달방’으로 부른다. 4층 구조 이 여관은 길 쪽은 상가, 뒤쪽은 여관으로 이용한다. 주변에 사는 한 주민은 “최근 한달 안쪽으로 주인이 바뀌었는데 투숙객들은 꽤 오래된 것으로 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이 한달에 30만원 안팎을 내고 제집처럼 지낸다”고 귀띔했다. 주변에서 식당을 하는 다른 주민은 “우리 집엔 거의 안 오는데 가끔 보긴 한다. 원래 어렵게 사는 이들인데 올여름 폭염에다, 요사이 비가 내려 통 일을 못 해 방세 내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피해자들은 이 여관과 1~2㎞ 남짓 떨어진 청주시 중앙동·사직동 등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복지 대상자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청주상당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피해자 셋 모두 청주에 연고가 있지만 꽤 오랫동안 각자 홀로 생활한 것으로 안다. 혼자 사는 이유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주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복지 담당은 “통상 자신이나 주변에서 기초생활 수급 등 복지 대상 신청을 하면 심사를 해 대상자로 관리하는데 이들은 복지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며 “전기·수도 등 체납이 있으면 현장 조사를 거쳐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여관에서 생활한 터라 이 또한 해당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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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 노동자 등 3명이 숨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화재 현장.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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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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