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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사설] 블랙리스트 사법처리에 ‘인권유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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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단체들이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유포한 혐의로 지난 20일 구속된 사직 전공의를 두둔하는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탄압’, ‘인권유린’, ‘표현의 자유’ 등을 들먹인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은 그제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해당 전공의를 면회한 뒤 취재진 앞에서 해당 전공의를 ‘피해자’로 지칭했다.

전공의 집단이탈 상황에서 의료 현장을 지키며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보살핀 의사들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이른바 ‘참의사 리스트’로 의사 인터넷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공개됐다. 6월에도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복귀 의사 리스트’가 나돌았다. 정부가 7월 전공의들에 대한 처분을 철회하며 의료현장 복귀를 유도하자 이번에는 ‘감사한 의사·의대생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는 텔레그램 채팅방이 만들어져 또 파문을 빚었다.

20일 구속된 전공의는 7월 리스트와 연관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리스트가 어떤 막심한 피해를 낳는지는 불문가지다. 집단 따돌림을 유도하는 좌표 찍기 아닌가. 그래서 블랙리스트다. 근무처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대인기피증을 겪는 사례도 있다. 의협 회장은 그런데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문제의 전공의에 대해 ‘피해자’ 운운하면서 “철창 안에 있는 전공의나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당한 전공의나, 그 누구라도 돕겠다는 것이 협회의 입장”이라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분별력도 없는 단체가 뭔 도움을 준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경기도의사회 대응도 가관이다. 서울 이태원 인근에서 ‘전공의 구속 인권유린 규탄’을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합법적 사법절차 과정을 거친 전공의 구속을 ‘인권유린’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단체는 “이런 정도의 소극적 의사 표현조차 말살하는 것은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했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신상 정보가 퍼진 것도 모자라 “불륜이 의심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 “사이코 성향” 등 악의적 댓글에 시달린 피해자들 인권은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다른 의사단체 반응도 오십보백보다. 서울시의사회는 블랙리스트 유포를 “정부의 초법적 조치에 대한 저항 수단”이라고 했다. 전라북도의사회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사법 조치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했다. 의사는 대한민국 사회의 존경과 대우를 받는 직업이다. 그 직역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사회가 용인할 선을 넘은 가해자를 감싸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 사회를 우롱하는 언행까지 일삼고 있다. 의사와 그 가족을 제외한 전 사회를 적으로 돌려도 좋다는 것인가.

블랙리스트만이 아니다. 의협 박용언 부회장은 페이스북에 ‘간호협회, 간호법 제정안 공포 환영’이란 대한간호협회 보도자료를 캡처해 올리면서 “그만 나대세요. 그럴 거면 의대를 가셨어야죠”라고 빈정댔다. “장기 말 주제에 플레이어인 줄 착각 오지시네요. 주어 목적어 생략합니다. 건방진 것들”이라고도 했다. 의협 회장단의 언행으론 믿어지지 않는 막말이다. 의사 사회는 최소한의 자정 능력도 필요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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