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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만물상] 푸틴식 엽기 출산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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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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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을 높이는 국가 정책의 역사는 중국 춘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월나라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장기 전략으로 여자는 17세, 남자는 20세가 될 때까지 의무적으로 결혼하게 했다. 그때까지 결혼하지 않으면 부모를 처벌했다. 현대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1967년부터 20여 년간 인권유린 수준의 출산 정책을 썼다. 주간 성관계 횟수를 3~4회로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했다. 피임하는 여성, 낙태 시술한 의사는 최고 사형에 처했다. 40세까지 자녀 넷을 두지 않으면 연봉의 최고 30%를 금욕세로 뜯어갔다.

▶나치 집권기 독일도 ‘레벤스보른’이란 인구 증가 정책을 도입했다. 나치 친위대원 부부의 출산 지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푸른 눈, 금발, 큰 체격’이란 조건에 맞는 여성을 집단 수용해 임신을 강요하거나 납치해 성폭행으로 임신시켰다.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은 킬링 필드로 알려진 자국민 학살 만행을 저지르면서 한편으론 여성의 배란기를 조사해 강제로 부부관계를 맺게 했다.

▶차우셰스쿠 집권 시기 루마니아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런데 출산 정책 초기 출생율이 두 배로 급증하며 온갖 비극이 빚어졌다.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는 부모가 자식을 내다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했다. 살아남은 아이는 소년 노동과 범죄로 내몰렸다. 당시 고통을 겪은 세대를 지칭하는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은 전체주의 국가의 강압적인 출산 정책 폐해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8명씩 낳던 우리 할머니 세대의 멋진 전통을 되살리자”며 출산을 독려하고 나섰다. 러시아 보건부 장관도 “근무 중 휴식 시간을 이용해 아이를 가지라”고 했다. 낙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정책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국민 100만명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전사자도 늘자 위기를 느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온갖 강압에도 차우셰스쿠 시기 루마니아의 연간 출산 증가율은 0.8%로 미미했다. 아이를 키울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아이 낳기만 강요한 결과다. 러시아도 ‘차우셰스쿠의 아이들’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반면 2400년 전 월나라는 자식을 낳으면 술과 고기 식량을 선물하거나 유모를 붙여주는 유인책도 함께 썼다. 최근 우리나라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거액의 장려금이나 승진 인센티브를 걸고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정책도 필요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고 그 아이가 살아갈 미래도 밝다는 확신을 젊은 부부에게 심어줘야 할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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