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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바이든·딕 체니 보니…초라한 韓 민주주의 [신율의 정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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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 8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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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미국 대선 직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점령했을 당시 아마도 전 세계 대부분 사람이 경악했을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그 정도로 허약한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우리나라가 그나마 미국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을 테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럼프 후보가 지난 3월 오하이오주 버니 모레노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며 “내가 당선되지 않으면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베네수엘라 대선 당시 들은 적이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내가 질 경우 유혈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가 피바다가 되길 원하지 않고 파시스트 때문에 내전이 일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위대한 승리를, 우리 선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포퓰리즘의 상징인 베네수엘라 대선에서나 들었던 ‘피바다’ 발언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다시 듣게 되니 정말 기가 막힌다. 트럼프 덕분에 미국 정치 상황은 이 지경이 됐지만, 그래도 미국 민주주의에는 아직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정치는 ‘권력 현상’이다.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다. 이런 권력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다. 김정은은 권력을 위해 자신의 이복형을 죽였고, 고모부를 무참히 살해했다. 북한을 보면 권력 속성을 알 수 있는 것은, 사회학자들이 나일강 유역이나 아마존 유역의 원시 부족 사회를 방문하고 관찰하는 이치와 똑같다. 사회학자들이 원시 부족을 관찰하는 이유는, 원시 부족이나 우리가 사는 사회나, 사회를 지배하는 근본적 메커니즘이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외형상’ 복잡하게 보여 사회의 근본적 메커니즘이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원시 부족 사회는 사회의 단순성 때문에 그 메커니즘이 아주 잘 드러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국가나 북한 같은 지독한 독재 국가나 권력의 근본적 속성은 마찬가지다. 다만 북한 같은 독재 국가에서는 그런 권력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은,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권력의 근본적인 속성은 나눌 수 없고 절대 빼앗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 차기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해 후보직에서 물러났다고 분석한다. 이런 분석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권력에 중독되면,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어도 자신은 당선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총선에서도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인사도 꾸준히 출마하는 것을 보면. 또 권력에 중독되면, 엄청난 표 차이로 낙선해도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이 차기 대선에서 낙선할 것이라고 스스로 예상했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경우는 4번밖에 없다. 즉,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또한 바이든이 낙선이 두려워 후보직을 사퇴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종합해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을 사퇴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그는 인간이 앓을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중독’이라고 하는, 권력 중독에서 헤어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의 후보직 사퇴는 미국 민주주의는 아직 살아 있고, 미국의 정치 과정에 아직도 이성적 사고(思考)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사례가 또 나타났다. 부시 행정부 시절 부통령을 지냈던 딕 체니다. 딕 체니는 네오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부시 대통령은 선의의 말과 행동을 해서 이미지 관리를 하고, 딕 체니 부통령은 강경 보수 입장을 취하며 세계를 관리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힘을 휘두른 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 대선에서 상대 진영 후보인 해리스 지지를 선언했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248년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보다 우리 공화국에 더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은 없었다”며 “그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거절한 후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과 폭력을 사용해 지난 선거를 훔치려고 했다.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 당파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고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라는 명제 앞에서는 진영 논리가 설 곳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이런 인물들의 결단이 있기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런 인물들이 버티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교해보면, 우리 상황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우리 정치에 과연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번 총선 당시 민주당에서는 ‘친명 횡재, 비명 횡사’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비명과 친문에 대한 공천 학살이 자행됐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친문이 ‘거의’ 사라진 이재명 대표의 ‘1인 정당’이 됐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과 전 사위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자, 각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평산마을을 방문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모두 ‘정치 보복’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정치 보복이라며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공천 과정에서 나타났던 ‘비명횡사’ 혹은 ‘멸문’이라는 단어는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진다. 서로에게 정치 보복을 했던 두 인사가, 이제는 외부로부터 정치 보복을 당한다고 주장하니 당혹스럽다.

여권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당 내에서 발생하는 친윤과 친한의 갈등, 그리고 여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불협화음은, 권력의 속성만을 보여줄 뿐, 그 어떤 가치도 발견할 수 없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민주주의 역사가 짧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민주주의 정치 체계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양식은 있어야 한다. 그런 ‘기본적 양식’은 바로 ‘가치’에서 비롯된다. 맨날 민생이 어쩌고, 국민이 어쩌고, 떠들어대지만, 22대 국회에서 합의 처리된 민생 법안은, 간호법과 전세사기 특별법 그리고 구하라법 정도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22대 국회는, 자신들의 추석 상여금은 꼬박 챙긴다. 전체 직장인의 40% 정도가 추석 상여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민생과 국민을 입에 달고 사는 국회의원들은 상여금까지 꼬박 챙기니, 이런 모습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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