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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사설]역학조사 결과 635일 기다리다 죽는 산재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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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10월4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반올림이 국회에서 산업재해 역학조사 지연에 대한 국가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반올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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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의 역학조사 결과를 받는 데 걸리는 기간이 지난해 평균 640일이나 되는 걸로 파악됐다. 22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직업환경연구원·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평균 소요 일수가 2017년 178.4일에서 지난해 634.6일까지 해마다 급증세다. 직업환경연구원은 2018년 평균 211.8일에서 지난해 588.1일로 2.8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 기간 385.9일에서 952.4일로 2.5배 길어졌다. 역학조사 도중 사망한 노동자도 직업환경연구원 기준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144명에 달한다. 일하다 병 얻은 것도 서러운데 역학조사 기다리며 고통을 받고, 도중에 죽는 노동자까지 이토록 많다니 노동당국은 뭐 하고 있는 것인가.

근로복지공단이 지난해 우원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역학조사가 늦어지는 일차적 원인은 인원 부족이다. 작업환경 변화로 새 유해요인과 희귀질환 발생 등 역학조사가 필요한 질병이 계속 늘어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두 기관의 현재 인력(27명)으로는 밀려 있는 사건을 제때 처리하기 어렵다고 한다.

역학조사 기간을 규정한 법률도 없으니 조사는 하세월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180일 이내’ 조사 마무리 지침이 있긴 하지만, 강제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난해 암 진단을 받고 사망한 삼성디스플레이 최진경씨도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따지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당시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편지에서 최씨는 “무엇을 조사하느라 4년이 필요한 것인가. 인력 부족을 떠나 직무유기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역학조사가 길어지면 노동자들은 치료 비용을 건강보험에 의존해야 한다. 산재 인정 후 비용을 받을 수 있지만, 그때까지 병원비 마련에 피가 마른다. 돈이 없어 더 나은 치료를 포기하고 산재 인정을 받기 전 죽음에 이르는 비극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최진경들’의 억울한 죽음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역학조사 기간을 법으로 정해 이를 넘기면 국가가 보험금을 선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역학조사 강화만이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니다. 산재의 인과관계 분석보다 예방 노력을 더 기울이고, 역학조사 등을 생략하는 산재 추정 원칙을 적용해 역학조사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벗으려면 당국과 기업의 자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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