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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오늘과 내일/박용]‘국뽕 경제’에 진짜 민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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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용 부국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틈만 나면 경제 성과를 자랑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고 난 뒤엔 ‘관세 폭탄’으로 얻은 미중 경제 전쟁의 성과가 대단하며 미 증시가 얼마나 잘나가는지를 부쩍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지친 민심은 냉랭했다. 그는 결국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했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얘기보다 권력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국뽕(자국 찬양) 경제’로는 민심을 크게 얻기 어렵다.

이탈리아-일본 따라잡는다 해도 민심 냉랭

정치 지도자들은 민심이 흔들리면 경제 성과를 강조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국뽕 경제’가 단골로 등장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때인 2021년 1월 신년사를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이 사상 처음으로 주요 7개국(G7) 국가를 넘어설 것”이라며 “14년 만에 주가 3,000시대를 열며 주요 20개국(G20) 중 가장 높은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최악의 집값 급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에서 이탈리아를 앞지른 1인당 소득과 주가 자랑은 민심을 파고들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부동산 실정’의 책임을 안고 202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3년 만에 일본을 턱밑까지 따라잡고 세계 수출 5대 강국의 자리를 바라보게 됐다”며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넘어섰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고 평가한 외신 보도도 언급했다. 대통령의 말처럼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됐는데도 지지율은 여전히 낮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통계 숫자로 경제를 얘기하지만, 기업인과 서민들은 시장에서 가슴으로 직접 느낀다. 자영업자들은 경제가 살아나고 수출이 블록버스터급이라는데 내수는 왜 나쁘고 장사는 안 되는지 더 궁금하다. 청년들은 열심히 일해서 집도 장만하고 결혼도 하고 싶은데 질 좋은 일자리도, 알맞은 주택도 별로 없다고 하소연한다. 30, 40대 중년들은 빚을 갚느라 쓸 돈이 별로 없고 50대 이상은 자산 격차를 실감하며 노후를 걱정한다. 민생과 직결된 일자리와 소득, 집값과 가계빚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데 수출과 국민소득과 같은 거시경제 지표로 서민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긴 어렵다. 금융투자세나 전 국민 25만 원 지급이 민생 정치라고 우기는 여야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지지율이 왜 오르지 않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대통령은 수출이 잘되고 있다고 하지만 기업 현장은 살얼음판이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내리며 경기 침체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독일 폭스바겐, 벤츠까지 밀어내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는 매섭다. 국내 가전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이제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라고 긴장한다.

국민 눈높이에서 ‘설득의 소통’ 노력해야

위기 상황에서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건 지도자의 책무다. 그렇다고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면 반향이 없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공감과 이해-문제의 인정-가능한 대안 제시-최적의 해법 선택’의 순이다. 민생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제대로 된 해법도 제시할 수 없으니 민심을 움직일 수도 없다. 공감과 이해, 문제 인식보다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국뽕 경제 인식이 앞서면 코로나19 위기로 분노한 민심에 주가 성적표를 들이대고, 집값 급등에 화난 사람들에게 1인당 소득 자랑을 하는 ‘소통 참사’가 일어난다. 진짜 민생은 그들의 자랑이 아닌,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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