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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횡설수설/우경임]200년 만의 폭우 쏟아지더니 하루 만에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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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으레 긴 옷을 입고 차례를 지냈던 추석인데 이번에는 에어컨조차 끌 수 없었다. 아무리 이른 추석이라지만 연휴 내내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이상한 날씨였다. 지독하게 덥고 길었던 여름을 밀어낸 건 여름 장마보다 무섭게 내린 가을 폭우였다. 19∼21일 사흘 동안 남부 해안과 제주 산지에는 최대 500mm 이상, 남부 내륙과 충청에는 200∼300mm 안팎의 비가 쏟아졌다. 경남 창원에는 21일 하루 397.7mm, 시간당 최대 104.9mm의 비가 내렸는데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비”라고 했다.

▷비가 그치자 청명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다. 전국적으로 낮 최고기온이 25도 안팎이라 아직 여름이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 하루 평균 기온이 20도 밑으로 떨어지고 다시는 올라가지 않아야 비로소 가을이 시작됐다고 본다. 하지만 기온이 갑작스럽게 10도 가까이 뚝 떨어진 탓에 체감상 쌀쌀하게 느껴진다는 사람이 많다. 제주는 폭우가 지나간 21일 밤에야 75일간 이어지던 열대야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일주일 새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는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과거와 다른 대기의 순환에서 비롯됐다. 여름은 보통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데 고온건조한 티베트 고기압과 중첩돼 ‘이중 열 커튼’이 형성되면 폭염이 찾아온다. 티베트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한 달 이상 머물면서 이번 추석까지 폭염이 이어졌다. 올여름 유독 태풍이 힘을 쓰지 못한 이유도 티베트 고기압에 막혀 한반도를 비켜 갔기 때문이다.

▷극한 폭우를 불러온 14호 태풍 ‘풀라산’도 열대 저압부로 세력이 약화해 한반도에 진입했다. 엄청난 양의 뜨거운 수증기는 그대로 머금은 채였다. 그사이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남하하고, 더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버티면서 정체전선이 형성됐다. 두 기압 사이 갇힌 수증기가 극한 호우를 뿌렸다. 짧은 가을장마의 원인은 여느 해와 다를 바 없지만 수증기량이 늘어 강수의 강도가 세졌다. 지구 온도가 1도 올라갈 때마다 대기 중 수증기량이 7%씩 늘어난다고 한다.

▷이런 기상 이변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일정했던 대기의 순환이 해수면이 뜨거워지면서 엉클어진 것이다. 특히 북반구 중위도에 있는 한반도는 여름에는 위력적인 태풍이, 겨울에는 극단적인 한파가 찾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해수면 온도가 오르면 태풍은 습해지고 강력해진다. 빙하가 녹아 북극 주변에 찬 공기를 가두고 있던 소용돌이(vortex)가 약해지면 한반도까지 한파가 내려온다. 올해도 가을다운 가을날은 거의 없고 곧바로 한파가 닥칠 것으로 예고됐다. 인간이 만든 재앙인 지구 온난화가 이제는 인간을 덮치고 있다. 지구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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