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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헬스장에 스테로이드 주사기 수북...9살 아이도 약물 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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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불법 약물 오남용

조선일보

인천 서구의 한 헬스장 화장실에 최근 “주사기는 쓰레기통에 버려달라”며 “모르는 척하겠다”는 안내문이 올라와 있다(왼쪽). 헬스장 업주는 불법 약품 주사기 무단 투기로 변기 수리비가 50만원 발생, ‘피눈물’이 난다고 호소한다. 오른쪽은 지난달 서울 중랑구의 한 헬스장 화장실 내부에 사용 후 버려진 주사기들이 쌓여 있는 모습.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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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가 헬스장 회원 김모(30)씨는 최근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주사기 몇 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사용이 이렇게 만연한 줄 몰랐다”고 했다. 23일 본지 기자가 찾은 서울 서초구의 한 화장실엔 “주사기 사용 적발 시 퇴출하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인터넷 헬스 동호인 게시판엔 주사기가 잔뜩 쌓인 화장실 사진이 종종 올라온다. 인천의 한 헬스장 관장은 지난달 “주사기를 제발 변기에 버리지 말아달라. 수리비만 50만원 나왔다”는 호소문을 붙이기도 했다.

2030 세대 사이에서 최근 웨이트트레이닝이 인기를 끌면서 불법 약물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 전문 보디빌딩 업계에서 은밀하게 유통됐던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이 이젠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졌다. 서울 성동구의 헬스 트레이너 최모(26)씨는 “인스타 몸짱 인플루언서 상당수는 불법 약물 사용자”라고 했다. 근육 합성을 촉진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나 성장 호르몬을 복용한 뒤 근육을 불리고, 교감신경을 촉진하는 에페드린을 사용해 체지방을 빠르게 줄인다. 일반적인 운동과 식단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근육량과 선명도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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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중랑구의 한 헬스장 화장실 내부에 사용 후 버려진 주사기 수십여 개가 쌓여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본지 기자가 23일 회원 수 약 4000명의 스테로이드 정보 공유 카페에 가입하자, 판매 업자 6명이 텔레그램·카카오톡 계정을 안내했다. 한 업자는 텔레그램으로 “단 하루 만에 받아볼 수 있다”며 제품 목록과 가격표를 건넸다. ‘디볼(스테로이드제) 10mg 100정에 6만5000원’ ‘아나바 10mg 100정에 10만원’ 같은 식이었다. 이 업자는 “경구용은 일반 알약처럼 먹으면 된다”며 “주삿바늘도 직경이 작아 통증이 적고 엉덩이 아무 곳에나 찌르면 된다”고 했다. 이 업자들은 중국·동남아·인도 등에서 정체 불명의 약물을 수입해 유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 헬스 트레이너나 보디빌딩 선수들은 “이 업계는 약물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 전국체전 보디빌딩 부문은 20여 년간 도핑으로 몸살을 앓았다. 오는 10월 전국체전 일반부는 아예 폐지됐다. 사설 보디빌딩 대회는 약물이 없으면 아예 입상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7일 경기 김포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무작위 도핑 검사 대상으로 지목된 입상자가 검사를 거부하고 종적을 감춘 일도 있었다.

문제는 취미로 보디빌딩을 하는 일반인들까지 약물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강원 원주시의 헬스 트레이너 A씨는 회원에게 불법 스테로이드제를 권유해 54만원 상당의 의약품을 판매하고, 어깨에 스테로이드 주사제를 주입한 혐의 등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한국도핑방지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2024.9) 대회 금지 약물 복용 적발 건수는 239건으로 집계됐다. 10대 청소년은 42건으로 5명 중 1명 수준이었으며, 이 중엔 9세 어린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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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을 의사 처방 없이 복용·주사하는 행위는 현행 의료법·약사법 위반이다. 약사법 개정으로 2022년 7월 이후 이런 약물을 구매한 사람도 처벌이 가능하지만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구매자를 처벌한 사례는 없다. 텔레그램 등에서 활발히 영업 중인 판매 업자들에 대한 단속·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2021년 2건, 2022년 0건, 2023년 2건, 2024년 8월 기준 3건이 전부였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테로이드제는 치료 목적으로 사용해도 기저 질환, 용량, 투약 중단 등에 있어 굉장한 주의가 필요한 약물인데 이를 근육 증가, 체지방 감소 등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말도 안 된다”며 “단기적으로 큰 문제가 없더라도 누적되면 심한 경우 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 30~40대 젊은 보디빌더들이 세균 감염, 심장마비 등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는 스테로이드.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이라고도 불린다. 염증 치료용으로 쓰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구분된다. 근위축증이나 테스토스테론 결핍 환자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지만, 근육량 증가·운동 능력 향상을 노린 오남용 문제도 심각하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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