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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탈원전 수사의 시작’ 최재형, 왜 총선 전 감사 결과 내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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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감사원장 직을 사퇴한 지 한달여만에 국민의 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2021년 8월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최 전원장은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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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감사 저항이 심한 감사는 내가 재임하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2020년 10월1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박 의원은 이날 ‘월성원전 1호기 폐쇄’ 감사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감사원이 피감기관에 사실과 다른 진술을 강요한다는 제보를 언급하며 ‘감사에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다그쳤다. 최재형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말도 안 했다. 사실을 감추고 허위 자료를 냈다”라고 맞섰다. 이런 ‘감사방해’ 행위를 제압하기 위해 감사관들이 어쩔 수 없이 강압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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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사 저항은 처음” 말 한 마디가 부른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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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감사방해’ 발언을 보도한 조선일보 2020년 10월16일치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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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발언은 이튿날 보수언론에 일제히 대서특필됐다. 감사원장의 탄식을 자아낼 정도로 감사 방해가 극심했다는 내용의 기사(조선일보, ‘감사원장의 탄식’)가 1면 사이드에 배치되는가 하면,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그의 사진이 ‘원전 감사, 이렇게 저항 심한 건 처음’(중앙일보)이라는 제목과 함께 1면 메인 사진으로 실렸다. 당시 나라 안팎에선 미국·유럽의 코로나19 대유행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를 둘러싼 한-미 간 갈등 등 큰 뉴스가 많았다. 보수언론들은 최재형의 발언이 이런 뉴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사설까지 써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산업부의 은폐·조작 범죄 행위도 밝히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산업부 공무원들의 자료 삭제를 “국가 감사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대전지검은 문신학 전 산업부 대변인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중 2명의 영장이 발부됐다. 최재형의 말 한마디로 산업부 공무원들의 고난이 시작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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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월성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월성1호기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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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법관 출신 감사원장의 어이없는 판결 비난





최재형은 문신학 등에 대한 대법원 무죄 확정판결을 몹시 언짢아했다. 그는 지난 8월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법 판결은 존중하지만, 그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다음과 같은 항변이 이어졌다. “1심에선 유죄가 나왔는데 2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은 2심을 그냥 인정한 것뿐이다. 그 공무원들이 자료를 파기해서 우리 감사관들이 고생 많이 했다. 감사 방해는 분명히 있었다. 그들이 자료를 파기한 건 확실하다. 산업부 공용 서버에 파일이 저장돼 있다고 해서 파기한 행위가 면책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논리라면, 살인하고 증거를 없애도 그 증거가 다른 데서 나오면 무죄란 말인가.”



최재형은 서울가정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까지 지낸 엘리트 법관 출신이다. 동료 판사의 판결 비난은 자제하는 게 법관 사회의 불문율이다. 31년 동안 법복을 입었던 그가 살인죄에 비유하면서까지 무죄판결을 비난한 것은 그만큼 억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법원 판결문을 보면 그의 반박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최재형은 ‘감사원이 요구한 감사자료를 산업부 공무원들이 부당하게 삭제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감사원도 지난 11일 ‘감사원·검찰은 탈원전 공무원을 어떻게 악마화했나’ 기사에 대해 똑같은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감사에 필요한 자료를 삭제, 파기했으니 감사 방해가 맞다는 주장이다.





재판부, “감사방해의 위험성조차 없다”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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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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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과 대법 판결은 이런 주장을 일축한다. 감사원이 ‘탈원전’ 감사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감사자료는 모두 산업부 공용 웹디스크에 저장돼 있었다. 또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다른 직원들의 피시(PC)에도 흩어져 보관돼 있었다. 게다가 감사원이 삭제·파기됐다고 주장한 파일은 “(자료를 삭제한 원전산업정책과 김아무개 서기관이) 다른 기관이나 공무원들로부터 전달받아 개인적으로 수집·보관한 자료들이거나, 결재를 받은 뒤 산업부 전자문서관리시스템에 등록까지 마친 다음 향후 업무에 참고할 의도로 개인 컴퓨터에 저장한 자료에 불과”(항소심 판결문)하다. 감사 자료는 산업부 공용 서버에 다 남아있고, 김 서기관은 자기 개인 파일을 삭제했을 뿐인데, 어떻게 감사방해죄가 성립하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감사원이 엉뚱한 피시를 디지털포렌식 한 사실에 주목했다. 감사원은 김 서기관이 삭제한 파일을 복원하기 위해 그가 사용했던 피시를 노렸다. 하지만 그 피시는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폐기되고 없었다. 김 서기관이 2018년 6월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돼 다른 직원이 피시를 넘겨받았는데, 8개월 뒤(2019년 2월) 사용기한이 만료돼 새 컴퓨터로 교체된 것이다. 김 서기관이 썼던 피시는 국가정보원의 보안 조치를 거친 뒤 폐기됐다. 결국 감사원이 2020년 1월 포렌식을 한 피시는 김 서기관이 사용했던 게 아니라, 새로 지급된 피시였다.



그럼에도 감사원이 새 피시에서 김 서기관의 파일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서기관의 피시를 물려받은 직원 덕분이었다. 이 직원은 김 서기관의 파일을 압축해 ‘예전 파일’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저장해 뒀다. 그 후 새 피시가 지급되자 ‘예전 파일’ 폴더를 산업부 공용 웹디스크에 전부 업로드했다가, 다시 새 피시에 다운받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참고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서”(검찰 진술)였다. 감사원은 이 직원이 아니었다면 망신을 톡톡히 당할 뻔했다. ‘감사방해’는커녕 자신들의 잘못으로 망칠 뻔한 감사를 살린 도움을 받은 셈이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피고인(김 서기관)의 파일 삭제로 인해 감사방해의 추상적 위험성조차 발생하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냈다.





최재형, 총선 이틀 전에도 다시 감사위원회 소집했지만





월성원전 1호기 폐쇄는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을 상징하는 조처였다. 이 원전은 설계수명이 이미 끝났는데도 무리하게 가동을 연장해 장비 고장과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 등으로 지역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 때 결정된 가동 연장 조처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2017년 서울행정법원)도 나와 있었다. 문재인은 대선후보 때 이 원전의 폐쇄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감사원장이 된 최재형은 2019년 9월 국회(당시 여소야대)가 요구한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에 올인했다. 감사원장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대한 감사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최재형은 여당의 강한 반발을 샀다. 그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에 타격을 가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의심은 전혀 근거가 없지 않았다. 최재형은 2020년 4·15 총선 전에 감사 결과를 발표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감사원 사무처가 내놓은 감사 결과가 여당에 불리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월9일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감사위원들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에 퇴짜를 놨다. 다음날(10일) 다시 소집된 회의에서도 감사위원들은 감사보고서를 의결하지 않았다.



그러자 최재형은 총선 이틀 전인 13일(월요일)에 다시 감사위원회를 소집했다. 통상 감사위원회는 매주 목요일에 열리고, 당일 결론이 나지 않으면 한 주 뒤에 다시 회의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재형은 주말 동안 감사관들에게 감사보고서를 보완하도록 한 뒤 월요일에 회의를 열어 감사보고서 의결을 시도했다. 어떡해서든지 총선 전에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듯했다.



감사위원회는 법원 재판과 같은 기능을 한다. 감사원 사무처가 내놓은 감사 결과를 감사위원 6명과 감사원장이 재판하듯 심리를 진행해 감사보고서 의결 여부를 결정한다. 만장일치가 안 되면 표결한다. 감사원장은 재판장 역할을 하지만 표결할 때는 감사위원과 마찬가지로 한 표만 행사한다.





감사원 출신 감사위원한테도 퇴짜 맞은 감사보고서





감사위원들은 최재형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주심을 맡은 유희상 감사위원을 비롯한 다수 위원들이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부했다. 유희상은 감사원 사무처에서만 26년간 근무한 ‘감사원맨’이었다. 그의 지적 사항을 감사관들은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회의는 밤 8시가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최재형은 대뜸 “감사원장을 그만두겠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자기 뜻대로 결론이 나지 않아 몽니를 부리는 것이었다.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최재형은 사직서를 참모한테 맡기고 퇴근해 버렸다. 최재형은 지난 8월12일 통화에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서 가급적 총선 전에 발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해명했다.



최재형의 ‘사퇴쇼’는 오래가지 못했다. 감사위원들이 그날 밤 최재형의 집으로 찾아가 사퇴를 만류하자 그는 “일단 좀 쉬어야겠다”라며 다음날 하루 휴가를 냈다. 감사위원들의 만류를 못 이기는 척 수용한 것이다. 하루 뒤 치러진 4·15 총선에선 최재형의 바람과 달리 여당이 압승했다. 다음날인 16일은 정기 감사위원회가 예정돼 있었다. 최재형은 이날 회의에서 또다시 감사위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검찰’하면 떠오르는 말은 ‘법치주의’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검찰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유도 법치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를 한답시고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탄압합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핵심 정책(공약)에 사법적 잣대를 마구 휘두르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제 식구는 철저하게 감쌉니다. 법치를 가장한 ‘가짜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검찰 수사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권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수상한 검찰 수사를 톺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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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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