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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한동훈이 던졌던 제시카법…민주당이 되살릴 때 ‘국힘 뭐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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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동혁 의원실 주최로 열린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간첩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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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여성이 왜 진보 의제인가? 현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가장 많이 얘기하는 건 보수다. 법무 장관 시절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제안을 저는 다 들어줬다. 신당역 스토킹 피해자 살인 사건 때 제일 먼저 달려갔고,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했다. 성범죄자 주거지를 제한하는 제시카법도 발의했다. 민주당은 뭘 했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0일 보도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법이 ‘건폭 몰이’ 등 노조 탄압, 주 69시간 노동 추진,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였다는 것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있을 때 검찰의 건폭 수사는 정점에 있었다. 한 대표는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의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밑바닥 젠더 인식을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법무부 장관 시절 젠더 폭력에 민감하게 대응한 한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다만 “민주당은 뭘 했느냐”며 자신 있게 말한 내용 중 하나인 제시카법 추진 과정과 현재 입법 상황은 뜯어볼 필요가 있다.





직접 마이크 잡은 한동훈





제시카법은 2005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학교 등 미성년자 교육시설로부터 600∼700m 이내 거주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500m 이내 거주 제한을 검토했지만 땅이 좁은 한국 현실에는 맞지 않아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 살게 하는 ‘한국형’으로 법안을 바꿨다.



지난해 10월24일 법무부는 재범 위험이 큰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국가가 지정한 시설에 살도록 하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입법예고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상습적, 약탈적으로 끔찍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국민들이 많이 불안해하시는 데 공감한다. 이들이 어디에서 거주할지는 국민의 일상·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2020년 12월 조두순, 2022년 10월 박병화 등 성폭행범 출소 때마다 거주 지역 주민의 격렬한 반발이 있는 터였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형기를 마친 범죄자에 대한 이중처벌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이미 위헌 판단이 나온 보호수용제처럼 위헌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보다 법무부 발표에는 더 큰 구멍이 있었다.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 시설이 들어설 지역의 주민 반발은 한국형 제시카법 입법 및 시행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고려 사항인데, 한 장관 발표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었다. 당시 한 장관은 “지금 단계에서 지역을 특정하면 논의를 모두 잡아먹을 것”이라고 했다. 일단 법안 통과가 중요하니 논란이 되는 내용은 뒤로 미뤄둔 셈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저는 꼭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국 입장에선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고 싶은 일일 것 같다…다시 말하지만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지구상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방안 찾아낸 국가는 없다.”(한동훈)





당장 이틀 뒤인 2023년 10월26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질의가 나왔다.





“한국형 제시카법에 의해서 마련될 수용시설이 있지 않습니까?…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논란은 떼고 필요성만 주장하고 간다? 적절치 않을 것 같고…여당이 주도해서 발표하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께서 직접 발표를 하시기에 저는 한동훈 장관께서 약간 관심이 있는 총선에는 불출마 하시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입법예고에서 국회 제출까지 최소 기간만 따져도 94일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걸 빨리빨리 한다고 그래도 정기국회 내에 국회에 제출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더 나아가서는 21대 국회가 곧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논의가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장관께서는 이것을 발표만 하고 야당은 패싱하고 논란은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하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당연히 이것을 내가 발표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 임기 안에 모든 사회적 논란과 이런 것도 잘 조정해 나가면서 가겠다, 이런 의지로 저는 생각을 했어요. 설마 이 법을 던져 놓고 국회에서 논란 벌어지고 사회적 논란은 벌어지고 그러는데 장관은 총선 출마하겠다고 이렇게 몸을 빼거나 그러시지는 않겠지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걸 어느 지역에 어디다 설치할 것이다라는 말을 미리 먼저, 지금 이 단계에서, 당연히 그건 부수되는 것이어서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만, 그 부분을 앞세우게 되면 이 논의는 진행이 불가능할 겁니다…총선 말씀하셨는데. 총선이 많은 분들에게 중요하시겠지만 모든 국민에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것 때문에 할 일을 안 한다? 그러면 총선이 이렇게 남아 있으면 중요한 법 준비된 것 안 올립니까? 해야지요.”(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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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10월24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를 제한하는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 입법 예고와 관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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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 국민의힘 직행





‘총선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로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한 장관은, 불과 50여일 뒤인 그해 12월21일 장관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닷새 뒤인 12월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해 이후 총선을 진두지휘한다.



법무부 장관이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한 이튿날인 12월2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으로 출석했다.





“지금은 장관은 떠나셨습니다만, 한동훈 장관이 중점적으로 제시했었던 한국형 제시카법 관련해서 두 달 정도의 입법예고기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법무부에서는 지금 이걸 어떻게 추진하고 있습니까? 고위험 성범죄자들에 대한 거주지 제한이 핵심이잖아요…17개 광역자치단체를 포함해서요, 지방자치단체에 의견 조회하신 적 있으십니까?”(박용진)



“지방자치단체의 의견 조회를 하고 있지는 않다.”(이노공)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해서 제일 핵심적 논란이 이게 어디냐. 그러면 어디에다가 해야 되냐. 어느 시설에 조두순, 김근식, 박병화 같은 사람들을, 이 좁은 대한민국 영토 안의 어디에 격리 보호할 수 있을 거냐라고 하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입법예고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제대로 된 의견조회나 의견청취조차 없이 가게 된다고 그러면, 진짜 힘들고 어려운 문제는 다 뒤로 계속 그냥 미루고, 난제는 계속 회피해 버리고, 절차적인 과정만 밟아 가는 건데. 이렇게 진행돼서 안정적인 입법 과정이 진행되겠나 하는 우려가 있어요…논란 되는 문제와 어려운 문제를 자꾸 피해 가시려고 그러면 안 된다는 말씀이에요.”(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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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12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씨가 경기도 안산시 거주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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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안심사 없이 폐기





입법예고 기간을 채운 한국형 제시카법은 해를 넘긴 지난 1월2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예상했던 대로 총선을 코앞에 둔 국회에서 복잡한 위헌 논란은 물론, 총선 표심에 영향을 미칠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 장소를 논의할 여력은 없었다.



여의도에서 한국형 제시카법을 다시 꺼내 든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다. 지난 2월20일 국민의힘 총선 안전 공약으로 법무부 장관 시절 자신의 입법 성과를 내세우면서다.





“처음에는 미국법처럼 만들려고 했는데, 우리나라 지형이 그렇게 허용이 안 된다. 그러면 (범죄자들은) 정말 섬이나 시골에만 살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포기하고, 정부 책임시설에서 관리하는 법으로 바꾼 것이다.”(한동훈)





국민의힘은 4·10 총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당한다. 국무회의 통과 엿새 뒤인 1월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던 한국형 제시카법안은 국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그리고 5월29일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폐기됐다.





22대 국회 제시카법 발의는 민주당





22대 국회 들어 한국형 제시카법을 발의한 것은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이다. 지난 7월9일 ‘고위험 성폭력범죄자의 거주지 지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김영진 의원 등 민주당 10명과 조국혁신당 조국 의원이 공동발의했다.



법안 발의 두 달여 뒤인 지난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해당 법안 검토보고서를 내놓았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헌법재판연구원이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지 제한에 대한 헌법적 검토’ 보고서를 내놓았다. 위헌 논란 등을 포함한 법안 심사 시기가 무르익고 있는 셈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기준으로 24일 오후 5시 현재 한국형 제시카법을 발의한 국민의힘 의원은 아직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연휴 때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을 봤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조두순을 연상시키는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한 뒤 지역 사회의 거센 반발 속에 동네 빌라에 거주를 시작한다. 대통령실은 지난 22일 윤 대통령의 영화 감상평을 전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국민들을 괴롭히는 중범죄자 위험군을 24시간 감시하며 시민 보호를 위해 어떻게 희생하고 애쓰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엠제트(MZ) 세대의 공공의식과 공익을 위한 헌신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공익을 추구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그린 이런 영화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지난 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한국형 제시카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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