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내 해병대 고 채 상병 묘역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전역 복과 모자를 올려놓고 채상병을 추모하고 있다. 이날 고 채상병 동기(1292기)들은 전역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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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화창한 26일 오전 9시20분께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 초록색 버스 2대가 터미널 앞에 멈추자 빨간 명찰을 단 장병 수십여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팔각모를 쓰고 커다란 군용 배낭을 어깨에 걸친 이들의 왼쪽 가슴팍에는 ‘대한민국 해병대’라고 쓰여있었다. 18개월동안 군 생활을 마친 해병대 1292기였다.
터미널에 도착한 이들은 전역을 기념하느라 분주했다. ‘축 전역’이라고 적힌 깃발을 펼치고 사진을 찍거나, 다같이 팔각모를 벗어 공중으로 던지는 퍼포먼스를 했다. 미리 구매한 전역 기념품을 줄지어 놓고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들은 “다시 보자”, “꼭 연락해라”라며 아쉬운 인사를 주고 받은 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 무리 속에는 고 채 상병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채 상병은 동기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채 상병에게 추모 메시지를 남겨주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에 이름 세글자로만 남아있었다. 채 상병은 지난해 7월 경북 예천군에서 구명조끼 없이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당시 생존 병사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물에 들어가서 실종자를 수색하라고 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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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같은 자리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예비역연대)는 전역하는 채 상병 동기들에게 ‘추모 전단지’와 기념품을 나눠주며 채 상병의 황망한 사망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또 채 상병을 위한 추모 편지를 받기도 했다. 일부 군인들은 편지지를 들고 터미널을 떠났다. 추모행사를 마친 예비역연대는 전세 버스를 타고 대전 현충원으로 이동했다.
오후 3시 대전 현충원에는 예비역연대가 마련한 ‘전역식’이 열렸다. 머리가 희끗한 해병대 189기 선배의 손엔 후배의 전역복이 들려있었다. 채 상병이 살아있었다면 이날 입고 전역했을 옷이었다. 차마 전역하지 못한 후배의 전역일, 선배들은 전역복과 모자를 들고 대전현충원에 잠든 ‘예비역 채 해병’을 찾아왔다. 주인 잃은 군복엔 해병대 마크와 태극기와 그의 이름이 허망하게 박음질돼 있었다. 영정 속 채 상병은 또렷한 눈매로 빼앗긴 그것들과 흐느끼는 전우들을 응시하는 듯했다.
이날 현충원에는 차마 참석하지 못했지만 채 상병 동기가 보내온 편지엔 함께 전역하지 못한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작년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동기에게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어. 그 정도로 말이 안되는 일이 있었으니까. 같은 동기끼리 무사히 전역하면 좋았을텐데…. 항상 하늘은 의로운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것 같아.”
현충원을 찾은 한 동기는 쪼그리고 앉아 채 상병의 사진을 한참 바라봤다. 사진 속 채 상병은 군복을 입고 엄마·아빠 사이 늠름하게 서 있었다. 이 동기는 “그 일이 없었다면 나도 바로 다음 차례에 수해 현장에 투입될 상황이었다. 너무 안타깝다”며 고개를 숙였다.
예비역연대의 행사가 종료된 오후 4시 이후에는 이날 전역한 동기들이 채 상병의 묘역을 개인적으로 찾았다. 부모·조부모와 함께 온 한 해병은 채 상병에게 쓴 편지를 묘소에 두고 갔다. 훈련병 당시 채 상병과 같은 내무반을 사용했다는 전역자 세명은 채 상병의 묘소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로 채 상병의 사진을 찍던 전역자는 “바로 앞 침상을 썼었다. 오늘은 의미가 큰 날이라 동기 얼굴 보고 싶어서 대전으로 달려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예비역연대는 이날 채 상병 묘역에 앞서 현충탑을 찾아 참배했다. 정원철 예비역연대 회장이 눈물을 흘리며 억울하게 떠난 후배를 향해 맹세했다.
정원철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장이 26일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전역한 해병대 1292기를 향해 채 상병 추모행사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주성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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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채 해병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는지, 비겁하고 비굴하게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지, 누가 수사 외압을 했는지, 누가 채 해병과 유가족과 해병대의 아픔을 키우고 있는지, 우리도 국민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밝혀져, 채 해병을 사지로 몰아넣은 자는 반드시 처벌받고, 수사 외압을 가한 윤석열 정권도 반드시 죄값을 치를 것입니다. 우리는 채 해병 앞에서 맹세합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편히 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싸우겠습니다. 싸워서 반드시 채 해병의 한을 풀어주겠습니다.”
애초 예비역연대는 채 상병의 동기 30명과 함께 대전 현충원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참가한 이들이 예상보다 저조했다. 터미널 앞에서 해병대 현직 간부들이 전역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전역자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 “(부대) 안에서 (추모행사 등을) 하지 말라고 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부 전역자들은 예비역연대의 동참 호소에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지만,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를 벗어났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예비역들은 “현직 간부가 서있는 것만으로도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항의했다. 한 예비역은 “전역일 자정까지 군인 신분이라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부들은 “전역자들의 복장 단속 등을 위해 일상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립 현충원 고 채 상병 묘역 앞에 채 상병이 살아있었다면 이날 입고 전역했을 옷이 놓여 있다. 최예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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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채상병 동기 해병대 1292기 전역일인 26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고 채 상병 묘비 위에 전역 모자가 올려져 있다. 채 상병 동기가 보내온 편지엔 “항상 하늘은 의로운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것 같아.”라며 함께 전역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은 전역복과 전역 모자, 편지 등을 가지고 묘역을 찾아 그를 추모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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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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