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레바논에 대한 지상 침공 가능성을 언급하며 전면전 위험이 커졌지만, 동시에 미국과 함께 임시 휴전 협상을 추진 중인 프랑스가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며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분쟁이 "몇 시간 내 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다만 이스라엘 내부에선 휴전 반대 의견이 속출 중인 상황이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선 레바논이 "또 다른 가자지구"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다는 우려가 분출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25일(이하 현지시간)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레바논 접경 지대인 북부 부대를 방문해 "우린 하루 종일 공습을 해 왔다. 이는 여러분의 진입 가능성에 대비하고 헤즈볼라를 계속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목표는 북부 주민들의 안전한 귀환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기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여러분의 군화, 기동화가 적의 영토와 마을로 진입할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번 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 연일 대규모 공습을 퍼붓고 있는 가운데 지상 침공이 뒤따를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할레비 참모총장은 이날 장병들에게 "여러분이 무력으로 그 지역에 진입하고 헤즈볼라 요원과 맞닥뜨리면 그들에게 전문적이고 고도로 숙련된,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대에 맞서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게 될 것"이라며 "여러분은 그들보다 훨씬 더 강하고 훨씬 숙련돼 있다"고 격려했다.
이날 접경 지대 부대를 방문한 오리 고르딘 이스라엘군 북부사령관도 지상전을 위한 "강력한 준비"를 강조했다. "우린 작전의 새 장에 들어섰다"며 "작전은 헤즈볼라의 화력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역량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조직의 지휘관과 요원들을 강타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에 직면해 우린 안보 상황을 바꿔야 하고 기동과 전투에 대한 강력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이날 헤즈볼라 대응을 위해 예비군 2개 여단을 북부로 소집한다고 밝히며 지상 침공 임박 신호는 더 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다만 할레비 참모총장 발언이 헤즈볼라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함인지 이스라엘 지도부가 실제로 지상전을 검토하고 있음을 암시한 것인지 분명하진 않다고 봤다.
지난주부터 본격화한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북쪽의 화살' 작전으로 명명한 이스라엘은 작전을 이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5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헤즈볼라가 상상도 못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며 북부 주민 귀환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거의 1년 간 이어진 헤즈볼라와의 국경 지대 교전으로 이스라엘 북부 주민 6만 명이 피난 생활 중이다.
이스라엘군이 25일까지 3일간 레바논 전역의 헤즈볼라 목표물 2000개 이상을 공습했다고 밝힌 가운데 <AP> 통신에 따르면 레바논 보건부는 25일에만 이스라엘 공습으로 72명이 숨져 3일간 총 사망자 수가 636명에 달하고 부상자는 2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 사상자 집계는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은 26일에도 간밤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 지역의 헤즈볼라 목표물 75곳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집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된 23일부터 3일간 9만 명이 새롭게 난민이 됐다. 지난해 10월 이후 레바논에서 이스라엘 국경 지대인 남부를 중심으로 이미 11만 명이 난민이 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분쟁으로 20만 명이 집을 잃었다는 의미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압달라 부 하비브 레바논 외무장관은 피난민 수가 5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25일 레바논 상황 논의를 위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선 레바논이 "또 다른 가자지구"가 되고 있다며 휴전 촉구가 터져 나왔다. <로이터> 통신 등을 보면 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에서 지옥이 터지고 있다", "레바논 국민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 전세계인이 레바논이 또 다른 가자지구가 되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살상과 파괴를 멈추고 수사와 위협을 낮추라. 전면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무엇보다 오랜 기간 분쟁의 인질이 돼 온 레바논 국민들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우리는 레바논이 새로운 가자지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레바논은 새로운 가자지구가 돼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도 회의에서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고 "이란이 영향력을 발휘해 헤즈볼라가 휴전에 동의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이스라엘이 자국 주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모든 전선에서의 즉각적 휴전을 위해 안보리가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대니 다논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나라들도 자국과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것이라며 "자국 시민이 공격 당하는 데 가만히 앉아 있을 나라는 없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또 헤즈볼라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지난해 10월7일 이스라엘 남부에서 1200명을 죽인 하마스와 같은 공격을 자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차석대사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미국이 확전을 막기 위해 역내 모든 당사자들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서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해 레바논에서의 휴전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도출하고자 했지만 미국의 반대에 막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 소식통들이 미국이 이스라엘의 압력이나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이는 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이 이스라엘이 "모든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었다며 레바논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란은 무관심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휴전 협상 타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미국, 프랑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 12개국은 25일 휴전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성명은 "국경 양쪽의 민간인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외교적 합의를 마무리해야 할 때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확대되는 가운데선 외교가 성공할 수 없다"며 "즉각적인 21일간의 휴전"을 촉구했다.
미국과 함께 휴전 협상 타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프랑스의 장노엘 바로 외무장관은 25일 지난 몇 시간 동안 레바논 임시 휴전 관련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영국 스카이뉴스와 <뉴욕타임스>를 보면 25일 미 고위 당국자들도 양쪽이 거의 합의에 도달했다며 "앞으로 몇 시간 안에"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휴전에 동의할 수도 있다고 희망적 관측을 내놨다. 당국자들은 협상이 타결될 경우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가 휴전을 준수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휴전에 반대하고 있다. 제1야당 예시 아티드를 이끄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21일은 너무 길다며 "헤즈볼라가 지휘·통제 체계를 복구할 수 없도록 7일간"의 휴전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도 휴전에 반대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 내부에서도 휴전 반대 주장이 나왔다. 리쿠드당의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은 휴전에 동의하는 것은 "최근 이스라엘의 주요 안보 성과를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리쿠드당 소속 북부 지역 시장들도 휴전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스라엘 북부 도시 하이파 상공을 날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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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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