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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사설] 'VIP 격노설'이 안보사항이라 사실 여부 답할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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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동기 1,292기의 전역일인 26일 경북 포항시 남구 상도동 포항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가 채 상병 추모 메시지 남기기 부스를 마련했으나 응하는 전역자가 없자 한 관계자가 마이크를 들고 이를 질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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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VIP 격노설’에 대한 군사법원의 서면 질의에 윤석열 대통령 측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한 수사에 대통령의 격노 여부가 왜 국가안보 문제라는 건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수사 외압의 배후임을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제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항명 사건 8차 공판에서 박 대령 측이 재판부를 통해 신청한 사실조회에 윤 대통령 측이 비서실장 명의로 제출한 서면 답변이 공개됐다. 사실조회 내용은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는 격노 발언을 대통령이 했는지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했는지 △대통령실 내선번호(02-800-7070)로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통화했는지 등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 답변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응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는 짤막한 한 문장이었다.

사실조회를 신청받은 당사자가 답해야 할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 격노 후 임성근 전 사단장이 피의자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수사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그런 발언을 정말 하지 않았다면 부인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외압 의혹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5월 기자회견에서 격노설 진위와 관련 “(이 전 장관에게) 왜 무리하게 진행해서 이런 인명사고가 나게 하느냐고 질책성 당부를 했다”고 동문서답을 하는 등 지금까지 명시적으로 발언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래 놓고 이번엔 국가안보 핑계까지 대니 군색하기 짝이 없다. 이러면 격노 사실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건 발생 1년이 훌쩍 넘은 어제는 채 상병이 살아 있었다면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아직 이 전 장관 소환조사조차 않는 등 굼뜬 행보를 이어가고,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네 번째 거부권을 예고하고 있다. 채 상병 어머니가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는 “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 진실이 밝혀지길 꼭 지켜봐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 국민들의 심정도 똑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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