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5 (금)

[단독] 혈세 지원받는 연구원의 정책과제 보고서 '표절', 징계는 감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정책과제 보고서
일부 표절률 67%... 작성자는 안 고쳐
2월 징계 의결했지만, 아직도 징계 안해
행안부 "연구 자질 없어... 곧 조치 예정"
한국일보

한국지방세연구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지방재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인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서울시가 정책에 활용할 보고서를 표절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보고서 작성자 징계를 7개월째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도 지방재정 및 조세 정책에 적잖은 영향을 주기도 하는 공공 연구기관의 보고서 연구윤리 위반과 징계 미이행 사실을 최근 감사를 통해 확인하고 시정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26일부터 3주간 실시한 지방세연구원 종합감사에서 연구원이 지난해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지방재정 분권 효과 분석과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정책과제 보고서의 표절 논란을 조사했다. 서울시는 지방재정 분권 확대 효과가 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확인해 정부에 개선방안이나 정책을 제안하려 지방세연구원에 과제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 지방세연구원의 박사급 연구원 2명과 외부 대학교수 1명이 팀을 꾸려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공동 연구해 제출한 보고서는 그해 12월 원내 점검절차에서 표절 검사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표절률이 19%로 나왔다. 연구원 내부 기준(표절률 15% 이내)을 넘어선 수치여서, 연구원은 연구팀에 보고서 수정과 보완을 요구했다. 연구 참여자 3명이 각자 맡은 부분을 분리해 별도로 점검했더니 A연구원이 맡았던 부분의 표절률이 67%에 달했다. 총 5개 장으로 구성된 보고서 중 지방재정 분권을 확대한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의 재정분권 정책과 그 효과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A연구원은 자신이 이전에 작성한 보고서를 대부분 그대로 베껴 제출한 '자기표절'이 의심됐다.

이에 따라 연구책임자는 A연구원에게 여러 차례 수정 보완을 요구했으나, A연구원은 "내가 연구해 온 분야고,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각주를 달았다", "예전에는 아무 이상 없었는데 왜 문제가 되느냐" 등의 취지로 항변하면서 보고서 수정 요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나머지 2명이 맡은 부분의 표절률은 각각 7%, 12%로 문제가 없었다.

결국 연구원은 올해 2월 외부전문가 2명이 참여한 연구윤리위원회(전체 위원 5명)를 열어 표절 여부를 최종 심의했고 최종적으로 표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보고서의 표절률을 15% 이내 기준을 충족하도록 수정하고, A연구원에게 징계를 내리라는 두 가지 사항이 의결됐다. 연구원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보고서가 최종적으로 표절로 판명된 건 2011년 연구원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느슨한 연구원 조직 분위기와 안일하고 해이한 연구윤리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지방분권 확대가 서울시에 미친 영향과 미래 재정분권 방향 등은 나머지 2명이 맡아 연구해 대안 제시 등이 담긴 결론에는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구기관에서는 표절 문제로 보고서 수정을 요구하면 연구자들이 보완하는 게 통례다. 연구윤리 중요성과 관련 규정이 강화되는 추세 때문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연구 보고서를 낼 때 표절률 기준 15%를 초과하면 보고서를 낼 수 없다"며 "(제출된 보고서의) 표절률이 문제가 된다면 보고서의 수정 요구를 거절하는 연구원은 없다"고 말했다.

원내 공식절차를 거쳐 의결된 사항인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다. 연구원 내에서는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 연구원장이 표절 보고서를 수정하라고만 하고, 징계에 대해서는 아무 지시가 없었다"며 "7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징계 절차가 가동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상 징계를 뭉갰다는 것이다.

최근 지방세연구원 종합감사를 마친 행안부는 공공 연구기관의 보고서 표절 논란에 적잖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행안부 관계자는 "보통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정을 요구하고, 최종 보고서는 (수정을 거쳐) 표절이 아닌 걸로 나와야 한다"며 "어떻게 보고서 표절이 가능했는지 매우 의아하다"고 말했다.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원장 단독 결정이 아니라 인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며 "다만 아직 감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답변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최종 감사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 3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