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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안방에서 직장까지 10초 컷...부부는 숨구멍 많은 3층 집 짓고 행복해졌다 [집 공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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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동안구 '뜻밖의 여행'
1층엔 상가, 2, 3층엔 주택
마당, 테라스, 발코니...숨구멍 많은 집

편집자주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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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자리한 상가주택 '뜻밖의 여행'. 1층은 책방으로 쓰는 상업 공간, 2, 3층은 건축주 가족이 사는 생활 공간이다. 외부와 시각적, 물리적으로 접점이 많은, '숨구멍' 많은 집이다. 김정현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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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없는 땅은 없다. 좁은 골목마다 집과 빌딩이 촘촘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구도심에선 더 그렇다. 오래된 도시 한가운데 집을 짓기란 한계와 제약 속에서 방법을 찾는 도전이다. 경기 안양시 동안구에 자리한 상가주택 '뜻밖의 여행'(대지면적 163㎡, 연면적 175.7㎡)도 대지의 뚜렷한 결점을 안은 채 첫 삽을 떴다. 집은 인접한 왕복 12차로인 경수대로에서 보면 앞 건물에 가려져 출입문만 빼꼼히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왼쪽 건물과 앞 건물 사이의 폭 2m, 길이 8m 남짓한 통로를 지나야 한다. 접근성이 높은 1층에 상업 공간을 계획했던 건축주로선 입구가 주둥이처럼 기다란 호리병 모양의 땅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건축주인 이은형(52) 윤창섭(55) 부부의 썩 내키지 않은 마음을 돌린 건 집 반대편의 전경이었다. 20년 넘은 2층 단독주택이 있던 자리였는데, 대로 반대쪽은 어린이공원과 맞닿아 시야가 트여 있었다. 이씨는 2층 테라스(현재 2층 거실)에서 벚나무를 본 순간 여기 살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결혼하고 쭉 이 동네에 살았지만 처음 와보는 뜻밖의 장소였다. 약 1년간 공사 끝에 완성된 3층 집에는 부부와 고2 아들 세 식구가 산다. 아내 이씨는 새 집을 지으며 동네 책방 운영을 시작했다. 1층은 1,600종 2,200권의 책을 들인 서점이고, 2, 3층은 가족의 생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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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집의 모습. 경수대로 방면에 위치한 건물의 전면(오른쪽 사진)이 앞 건물에 가려져 있다. 출입문만 겨우 보인다. 비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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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반듯한 콘크리트 사이...삐딱한 눈썹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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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과 거실, 부부 침실이 자리한 2층의 생활 공간. 천장의 지붕 트러스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단차를 두어 개방감 있게 공간을 분리했다. 김정현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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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 큰 창은 바깥의 벚나무와 어린이공원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 김정현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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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이씨가 알고 지내던 비그라운드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윤경숙 소장과 차주협 소장이 맡았다. 건축가로선 까다로운 과제였다. 건축주는 신축을 원했지만 건축법상 신축 시 요구되는 주차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1층을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도 해야 했다. 결국 신축 대신 증축·대수선 하기로 결정했다. 뼈대만 남기고 다 철거하는 대공사였다. 주차 문제는 "차 때문에 집을 포기하는 게 맞지 않다는 생각"에 한 대는 처분하고 남은 한 대는 인근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외관은 네모 반듯한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삐딱한 경사 지붕, 눈썹 지붕으로 계획했다. 건축비로 4억5,000만 원(인·허가 비용 포함)이 들었다. 윤 소장은 "땅을 매입한 상태에서 건축가에게 오는 경우가 많은데 법적인 고려를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며 "기획 단계부터 건축가와 함께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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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서점의 내부. 보강 구조물인 '브레이싱'을 책장으로 활용했다. 건축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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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보강 장치가 1~3층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게 이 집의 특징이다. 매끈함 대신 울퉁불퉁한 구조물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을 택했다. 2층 주방과 거실을 잇는 자리엔 지붕 트러스(지붕을 덮는 틀)가 그대로 모습을 보이고 3층 아들 방 천장의 브레이싱(건축물의 흔들림·변형을 막기 위해 대는 부재)은 아들이 고른 파란색으로 칠해 눈에 확 띈다. 1층 서점에는 엑스(X)자 모양의 브레이싱을 책장 인테리어로 영리하게 활용했다. 윤 대표는 "가리게 되면 천장이 낮아지고 답답해 보일 수 있어 구조물을 노출시키고 개방감을 줬다"고 말했다.

10초 컷, 직주일체 집에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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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방으로 쓰이는 3층과 다락. 실용 음악을 전공하는 아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기타를 친다. 김정현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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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안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호계동 토박이다. 애정 깊은 이 동네에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역의 문화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동네 책방의 가능성을 봤다. 전북 전주에서 동네 책방을 먼저 운영하던 지인도 "언니라면 잘 할 수 있다"며 응원했다. 결혼하고 15년 동안 아파트에만 살다가 집을 짓고 1층에 책방을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시작된 계기다. 지켜보는 남편은 걱정이 앞섰다.

"어렸을 때 집이 시골에서 가게를 했어요. 학교 다니고 한창 놀 나이에 아버지가 가게 좀 보라 그러는 게 싫더라고요. 몸이 매여 있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 아내가 유독 활발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데 걱정이 됐지요."

직장인의 꿈인 '직주근접'을 이룬 사람은 많아도 '직주일체'에 성공한 사람은 흔치 않다. 집과 직장이 한 곳에 붙어 있는 생활 3년차, 어땠을까. 이씨는 "한껏 게으름을 피워도 직장까지 10초 컷이라 아이도, 책방도 필요할 때 수시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남편 걱정대로 가끔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주는 설렘과 재미가 더 크다. 단조롭지 않은 공간의 힘이다. "단독주택에 살면 꽃이 번갈아 피고 열매 맺는 걸 보면서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거든요. 물론 일이 많아요. 낙엽도 쓸어야 하고 눈도 치워야 해요. 그런데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계절을 경험하면서 살아 있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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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2층 거실 창가에 앉아 만개한 벚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건축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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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하이라이트는 벚나무가 눈에 가득 들어오는 2층 거실이다. 거실에 넓게 난 창은 벚나무를 품은 어린이 공원을 차경(借景)한다. 바깥 풍경을 집으로 끌어들여 22평가량의 2층은 실제보다 넓어보인다. 시시각각, 사시사철 변하는 창밖 모습이 집 안을 생기 있게 만드는 건 덤이다.

책방에 반대하던 남편도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변신했다. 눈썰미와 손재주 좋은 남편은 책방의 대부분 가구를 손수 만들었다. 책방에서 모임이 있을 땐 가끔 셰프로 변신해 요리도 한다. 기획해봄 직한 행사를 먼저 제안하기도 한다. 이씨는 "공간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마당, 테라스, 발코니... 숨구멍 많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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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서점은 어린이공원과 접한 한쪽 벽면에 폴딩도어를 설치했다. 폴딩도어는 공간에 가변성과 확장성을 제공한다. 김정현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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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평이 안 되는 땅에 지은 집이지만 층마다 빈 공간, 여백이 하나씩 있다. 1층 서점이 어린이 공원과 맞닿은 부분에는 한옥의 대청 마루를 떠올리게 만드는 작은 마당이 있다. 2층에는 주방과 이어지는 테라스를, 3층 아들 방엔 발코니를 만들었다. 차주협 소장은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건물의 구멍"이라며 "특히 도시에서는 꼭 창문이 아니더라도 외부와 시각적, 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종의 숨구멍인 셈이다. '뜻밖의 여행'은 지난해 경기도 건축문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실내 공간으로 꽉 채우기보다는 덜어내기를 선택했더니 일상에선 종종 뜻밖의 연결이 일어난다. 공원에서 운동하던 사람이 1층 마당에서 책장을 만든다고 톱질을 하는 남편에게 "뭐하고 계시냐"며 알은체를 하고, 북 토크를 진행하던 아내 이씨와 눈이 마주친 행인은 목례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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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하고 보니 단점이 뜻밖의 장점이 됐다. 책방지기인 이씨는 짧지만 좁은 길이 골목으로 접어든 것처럼 손님들에겐 신선한 모양이라며 다른 곳으로 공간 이동한 것 같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건축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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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문도 하루만 열고 닫는 팝업의 전성 시대, 건축주는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책으로 교감하며" 살아가길 꿈꾼다. 이씨는 "최연소 단골 고객이 36개월 된 아이"라며 "그런 어린아이들이 커서 찾아왔을 때 '책방 아줌마 저 왔어요' 할 수 있는 동네의 정서적 언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집 공간 사람(집공사)' 시리즈가 이번 편을 끝으로 휴재에 들어갑니다. 2017년 7월 12일 첫 회가 연재된 이후 8년 만입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들과 취재에 응해 주신 건축주, 건축가, 건축사진작가들께 감사드립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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