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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배추 한 통이 '배춧잎 한 장' 됐다…"칼국숫집도 겉절이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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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포장김치 코너에 배추 수급 문제로 인한 김치 상품 소량 입점 안내문이 붙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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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만한 알배추 8개가 들었는데 9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27일 정오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샤부샤부 식당에서 근무하는 직원 김모(49)씨가 요즘 배추 가격을 설명하며 성인 손 크기를 조금 넘는 알배추를 가리켰다. 김씨는 “원래 한 박스에 2만원 하던 금액인데 말도 안 되게 (가격이) 올랐다”며 “샤부샤부 가게이니 배추를 뺄 수도 없어서 난감하다. 배춧값이 비싸 집에서 사 먹기 어려우니 손님들도 평소보다 배추를 더 많이 드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폭염 등의 요인으로 배추 가격이 치솟으면서 밑반찬으로 김치를 주거나 배추를 주 식재료로 하는 식당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이날 기준 배추(상품) 한 포기 평균 소매 가격을 9963원으로 집계했다. 배추 한 포기에 ‘배춧잎 한 장(1만원)’ 가격인 셈이다.

배추를 주재료로 쓰는 식당 10곳에 문의하니 모두 배춧값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보쌈이나 샤부샤부처럼 배추가 주재료인 음식의 경우 배추를 재료에서 뺄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배추를 사 들인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샤부샤부 식당을 운영 중인 이모(54)씨는 지난 추석 때 온 가족을 동원해서 배추 세일 행사를 하는 한 대형마트로 향했다. 이씨는 “배추가 금값이다 보니 그나마 저렴하게 배추를 파는 곳을 찾기 위해서 전국을 헤맸다”며 “군산 대형마트에서 어렵게 배추를 구매하는 ‘횡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샤부샤부에 배추 대신 양배추 등 다른 걸 쓸 수도 없고 고민이 많다”며 “심지어 청경채도 박스당 3만원 하던 게 5만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전체적으로 식재료 가격이 약 1.5배 이상 올라 부담이 크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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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가격 고공행진이 이어진 27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배추가 판매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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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등 밑반찬으로 배추를 사용하는 일부 한정식 음식점은 배추김치 대신 깍두기나 열무김치로 메뉴를 바꾸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김모(53)씨는 이달부터 직접 담근 배추김치 대신 포장 김치를 사거나 열무김치, 깍두기로 대체했다. 김씨는 “배추가 메인 재료도 아니고 밑반찬인데 그 가격에 쓸 수는 없어서 (메뉴를) 바꿨다”며 “손님들도 언론을 통해 워낙 (배춧값)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식당은 손님 눈치에 배추김치를 빼지도 못한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20년간 칼국숫집을 운영해온 최모(67)씨는 “한 망에 8000원 하던 배추가 최근 한 달 새 2만원으로 올랐다”며 “20년간 식당일 하면서 꾸준히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오른 건 처음”이라며 황당해했다. 최씨는 “가격이 올랐다고 김치를 뺄 수는 없지 않으냐”라며 “손님 불평이라도 나올까 봐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도 배춧값에 대한 고민을 호소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칼국숫집 사장은 손님들에게 직접 만든 겉절이를 반찬으로 내놓다가 당분간 겉절이 제공을 포기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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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영향으로 배추 등 채소 가격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 채소코너에서 한 시민이 배추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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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는 27일 수입 배추 초도물량 16톤(t)을 들여오는 등 중국산 배추 수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급과 관련해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배추를 수입하면 일시적으로 가격 상승 상황을 완화할 수 있겠지만, 가격 왜곡이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짚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내놓는 긴급 대책은 사실 대증요법(증상 완화)에 가깝다”며 “기후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보다 근본적인 농산물 수급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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