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의사 전적 신뢰… 최악 등급 교모세포종 이겨냈죠”[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정택 중앙대병원 교수-뇌종양 강경아 씨

두통·구토 증세… 교모세포종 진단… 8일 만에 수술, 거대 암덩어리 제거

체력 키우며 항암방사선, 7년째 건강… 투병 의지-의사 신뢰가 완치의 길

떠도는 가짜 정보에 혹해선 안돼… 5년마다 뇌혈관 등 검사 받아야

동아일보

강경아 씨(오른쪽)는 최악의 암 중 하나로 꼽히는 교모세포종에 걸렸지만 투병 의지를 꺾지 않고 암과 싸워 사실상 완치를 얻었다. 강 씨의 치료를 담당한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재발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6년 7개월 이상 암이 재발하지 않고 있어 완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중앙대병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경아 씨(55)는 2018년 2월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 후 6년 7개월이 흘렀다. 5년을 훌쩍 넘겼으니 사실상 ‘완치’다. 하지만 재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강 씨의 치료를 맡은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종양에는 완치 개념이 없다”며 “5년이 지난 후에도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요즘 강 씨의 몸 상태는 무척 좋다. 강 씨는 “불편한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전보다 더 자주 여행을 다닌다. 제2의 삶을 만끽한다. 그런 강 씨도 처음에는 여느 암 환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당수의 환자가 암 판정을 받으면 하늘을 원망한다. 강 씨도 그랬다. 처음엔 죄를 짓고 산 것도 아닌데 왜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곱씹었다. 강 씨는 자신의 병이 혹시나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권 교수에게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이 “아이들에게 유전되느냐”였다. 유전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부모님께도 자식이 먼저 아픈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강 씨는 곧 마음을 추슬렀고, 적극적으로 암과 싸웠다. 강 씨의 뇌종양 투병기를 들어봤다.

● 뇌종양, 두통과 구토 유발

2018년 2월 15일 두통이 시작됐다. 가끔 있는 일로 여기고,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진통제만 사서 먹었다. 그런데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구역질과 구토 증세가 추가됐다.

4일 후 딸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다.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또다시 구토가 시작됐고, 멈추지 않았다. 얼른 근처에 있는 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 보라고 했다. 강 씨는 중앙대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뇌 영상 촬영을 했다. 뇌종양이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구토는 뇌종양의 가장 흔한 증세”라며 “뇌 안의 압력이 커지면서 토하게 되고, 여기에서 더 심하면 의식이 떨어지거나 뇌전증까지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강 씨가 구토 단계에서 병원에 신속하게 왔기에 이후 대처를 잘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라면 대체로 잠자고 일어났을 때 증세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깨어 있을 때는 호흡이 원활하니 뇌로 가는 산소도 넉넉하고 뇌 안의 압력도 적정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잠을 자게 되면 호흡량이 줄면서 뇌 안의 산소가 감소하고, 뇌 안의 압력은 올라간다.

권 교수는 “사실 두통만으로는 뇌종양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5년마다 뇌혈관을 포함한 뇌 검사를 받는 게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 최악의 교모세포종

강 씨의 경우 뇌의 오른쪽 앞부분에 악성종양이 있었다. 암의 크기는 지름이 무려 6cm에 달했다. 암 덩어리가 큰 것도 문제였지만, 암의 종류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진단명은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뇌종양을 심각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는데, 교모세포종은 최악인 4등급에 속한다.

교모세포종은 뇌 조직 전반에 발생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5년 생존율이 10%를 밑돈다. 그만큼 치명적인 암이다. 하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권 교수는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고, 의료 기술도 좋아지고 있어서 생존율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강 씨의 상황은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악성종양이 증식하는 비율의 수치가 너무 높았다.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마저 강 씨는 작동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암이 더 빨리 퍼지고, 약효가 잘 듣지 않는 유형이었다. 권 교수는 “강 씨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는데, 이런 경우 6개월에서 1년 정도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며 “수술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수술을 선택했다. 권 교수는 “어려운 수술이지만, 수술하지 않을 경우 수명이 6개월도 안 될 거로 생각했다”며 “다행히 광범위하게 암을 절제할 수 있는 부위여서 과감하게 수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속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4일 후 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뇌의 앞쪽 부위를 크게 절제한 뒤 암 덩어리를 들어냈다. 다른 수술과 달리 뇌 수술은 미세한 신경 조직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전신 마비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별도의 ‘수술 감시장치’를 사용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환자의 감각이 떨어지는지, 팔다리는 움직이는지 등을 수시로 파악하는 것. 강 씨 수술의 경우 다행히도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수술을 마치는 데는 한나절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권 교수는 “요즘에는 뇌 항법 장치 등 장비들이 더 첨단화하면서 수술 시간도 줄고 더 안전하게 암을 제거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 “가족 생각하며 항암치료 이겨내”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강경아 씨의 수술 전(위쪽)과 수술 후 뇌 MRI 사진. 지름이 6cm에 달하는 암덩어리가 완전히 제거된 모습이다. 중앙대병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치료가 끝난 건 아니었다. 수술하고 한 달이 지난 후 곧바로 항암방사선치료(CCRT)에 돌입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따로따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권 교수는 “교모세포종의 경우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이 표준 치료법이다”라고 말했다.

강 씨는 주말 이틀을 빼고 평일에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치료를 받았다. 이런 식의 항암방사선치료는 약 40일 동안 진행됐다.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곧바로 단독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한 달에 5회씩 총 6주기, 그러니까 30회의 단독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강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투병 의지를 다졌다. 그래야 할 이유도 있었다. 강 씨가 수술 후 퇴원한 뒤 집에 갔을 때였다. 딸아이가 교모세포종에 대해 검색하고 나서 울고 있는 것을 봤다. 그때 강 씨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병을 이겨내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항암치료를 받다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헛구역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꾹 참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많이 먹었다. 보통 암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에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쭉 빠진다. 하지만 강 씨는 오히려 체중이 늘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2018년의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강 씨는 더위에 맞서면서 매일 1시간 반 정도씩 산에 올랐다. 운동도 쉽지는 않았다. 축축 처졌다. 그래도 체력이 닿는 대로 높이 올라갔다. 이렇게 강 씨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견뎌냈다.

● “의사를 신뢰해야”


강 씨는 “의료진은 내 생명만 살린 게 아니라 가족의 삶도 찾아줬다”고 말했다. 강 씨는 암 환자의 완치에 절대 필요한 덕목으로 ‘의료진에 대한 믿음’을 꼽았다. 사실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소통하기 껄끄러운 대상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말하는 의사를 믿고 따르기란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또 다른 ‘특효 처방’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오직 권 교수의 처방만 따랐다.

현실적으로는 많은 암 환자들이 이러지 못한다. 암에 걸린 후 더 많은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와 같은 환자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문제는, 이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정보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강 씨도 인터넷 카페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권 교수의 처방에 어긋나는 방법은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잘했고 강 씨 자신이 잘 투병하고 있으니 다른 조치가 필요 없다는 권 교수의 처방을 믿고 따른 것이다. 강 씨는 다른 암 환자에게도 이 점을 꼭 당부하고 싶다고 했다.

“환자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해 치료 효과가 높다며 특정 상품을 팔려는 사람들이 많이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현혹되기 쉬운데, 그러지 마세요. 의료진을 믿고 따르는 게 옳습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