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中 강압 피해 강조하는 '여론전' 동시에 美 등 동맹 힘 빌려 맞서
베트남, '中과 우호' 포장 아래 인공섬 건설 속도 실속…中 '도광양회' 벤치마킹?
[그래픽]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 |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요즘 동남아의 핵심 현안 중 하나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다.
남중국해 전역을 사실상 독차지하려는 중국 공세 앞에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각자 자국 쪽 바다를 지키느라 부심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각자 중국과 분쟁 중인 필리핀과 베트남의 매우 대조적인 접근법이다.
우선 필리핀은 중국 강압에 공개적으로 맞서면서 때로 정면충돌도 불사하는 모습이다.
필리핀은 1999년 남중국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노후 군함을 고의로 좌초시키는 방식으로 이곳에 병력을 상주시켜 왔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사비나 암초(중국명 셴빈자오·필리핀명 에스코다 암초)에도 해경선을 보내 넉 달 이상 머물게 하면서 영유권 주장을 뚜렷이 했다.
그러자 중국이 이런 '알박기'를 쫓아내기 위해 필리핀 배에 물대포를 쏘거나 자국 선박으로 들이받는 등 줄기차게 공격함에 따라 양측은 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물론 선박 크기와 숫자부터 군사력까지 중국 전력이 압도적인 탓에 양국 충돌에서 필리핀은 주로 피해를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필리핀은 이에 굴하지 않고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관련 사진과 영상 등 자료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신속하게 공개, 자국의 피해 사실을 널리 부각하고 있다.
거대한 중국 해경선이 강력한 물대포로 아담한 필리핀 배를 윽박지르는 모습, 손도끼·벌목도 등으로 무장한 다수의 중국 해경이 소수의 필리핀 측 인원을 둘러싸고 위협하는 장면이 퍼질 때마다 필리핀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강자' 중국의 공격적인 행태에 분노하는 여론이 끓어오르곤 한다.
중국 해경,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군 공격 |
이는 2022년 집권 이후 미국, 일본, 호주 등 서방과 방위 협력을 급속히 강화하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의 친미 노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일본과 역사적인 첫 3국 정상회의를 갖고 3국 합동 방위체제 구축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미국 등과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잇따라 실시하고 중국이 기피하는 미국의 최신 중거리 미사일 체계 '타이폰'(Typhon)을 자국에 배치하는 등 동맹의 힘을 빌려 중국과 대립각을 한층 세우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과 분쟁 중이라는 점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일견 중국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중이다.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달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중국으로 날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시 주석과 럼 서기장은 서로 상대국이 자국 외교의 최우선 순위라고 띄워주면서 남중국해 문제에서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분쟁을 확대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말자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이런 조용한 표면 아래서 베트남은 중국을 '벤치마킹'해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AMTI)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매립을 통해 만든 땅 면적은 약 955만㎡로 추산됐다. 불과 3년 만에 7.2배로 불어나 중국(약 1천882만㎡)의 절반 수준까지 맹추격했다.
남중국해에서 베트남 최대 인공섬인 바크 캐나다 암초의 경우 6개월 만에 면적이 96만㎡에서 167만㎡로 2배 가까이 넓어지면서 남중국해에서 4번째로 큰 인공섬으로 변신했다.
이 암초에는 이제 3천m 길이의 대형 활주로까지 들어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남중국해 베트남 인공섬 |
베트남은 이들 인공섬을 이용해 현지에 선박과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하고 레이더망을 설치해 중국 선박들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게 됐다고 베트남 군사 전문가인 하 오앙 홉은 워싱턴포스트(WP)에 설명했다.
베트남은 당국의 자금 지원을 받고 외국 배들을 쫓아내는 해상민병대 선박을 늘리는 중국 전술도 따라 하고 있다.
마치 덩샤오핑 시절 중국의 대외정책인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베트남이 중국 상대로 구사하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필리핀과는 끊임없이 충돌하는 반면, 베트남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서는 거의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의 인공섬 건설 등 활동을 막으려는 행동을 한 것이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없다고 지적했다.
남중국해 해양활동 감시 프로젝트인 '씨라이트'(SeaLight)의 레이 파월 국장은 SCMP에 "중국이 필리핀에 신경이 쏠린 틈을 타 베트남이 인공섬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면서 필리핀이 중국에 유화적이었으면 중국이 베트남 활동에 더 관심을 쏟았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물론 필리핀과 베트남을 비롯해 관련국들이 처한 환경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필리핀 방식'과 '베트남 방식'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거대 중국의 등쌀에 시달리며 대응 방법을 찾느라 애쓰는 주변국들은 필리핀과 베트남의 대조적인 행보를 지켜보며 참고할 부분을 분주히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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