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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공정위, ‘최혜 대우’ 요구 배민 갑질에 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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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요기요도 함께 조사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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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민족(배민)·쿠팡이츠·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3사의 중개 수수료 갑질 의혹을 조사 중인 공정거래위원회가 1위 업체인 배민의 ‘최혜 대우 요구’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 앱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배민이 음식점 점주들에게 다른 배달 앱에서 판매하는 메뉴 가격보다 낮거나 동일하게 설정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조사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배민의 시장 점유율은 58.7%였고, 쿠팡이츠(22.7%)와 요기요(15.1%)를 합친 3사의 점유율은 96.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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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도마 위에 오른 ‘최혜 대우 요구’

29일 공정위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배달 3사의 자사 우대와 끼워 팔기, 멀티호밍(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 4대 불공정 행위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음식점 사장들에게 주문 1건당 1000원의 중개 수수료를 받던 배민·쿠팡이츠 등은 2022년 초 주문액의 9.8%(쿠팡이츠)나 6.8%(배민)의 정률 방식으로 수수료 체계를 바꿨다. 이후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경영난을 겪는 음식점들과 관련 프랜차이즈 업계가 배달 플랫폼의 과도한 수수료를 문제 삼자 공정위는 지난 7월 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는 음식점들이 메뉴 가격이나 할인 행사 수준, 최소 주문 금액 등을 경쟁사 수준과 같거나 유리하게 맞춰주지 않으면 식당 이름 노출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식의 최혜 대우 요구가 배달 앱 간 경쟁을 막아 음식점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1위 배민의 최혜 대우 요구가 3사의 경쟁적 갑질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보고 배민 관련 의혹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배민을 공정위에 신고한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도 “시장 점유율 60%에 달하는 배민을 안 쓰기 힘들고, 배민의 최혜 대우 요구를 고려하면 수수료율 인상분을 음식 값에 반영하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배민은 주문액의 6.8%였던 수수료율을 지난 8월 9.8%로 올렸다. 1·2위 업체의 수수료율이 같아지자 3위 요기요도 12.5%였던 수수료율을 9.7%로 낮췄다.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최혜 대우 요구는 지난해 8월 경쟁사가 먼저 시작해 방어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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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배민에 끌려다니는 음식점들

배민은 지난 2011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배달 플랫폼의 선두 주자다. 이후 ‘배달=배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시장 점유율을 넓혀갔고, 한때는 80~90%에 달하던 점유율이 60%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업계 1위다. 전형적인 ‘퍼스트 무버 효과(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기업이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점하는 현상)’를 누리는 것이다.

음식점 등은 배달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형편이다. 고객이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익숙해지면 경쟁 업체로 바꾸기 어려운 이른바 ‘록인(lock-in·잠금) 효과’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배달 플랫폼 시장이 그간 퍼스트 무버들의 록인 효과로 독과점 현상이 굳어지는 구조”라며 “공공 배달 플랫폼 등 다른 경쟁 업체들이 성장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공정위 제 역할 못 한다”

공정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배달 수수료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지난 7월 3일 ‘배달 플랫폼-입점 업체 상생 협의체’를 구성하고 자율적으로 배달 3사의 수수료율 인하를 유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1위 배민이 협의체 출범 일주일 뒤 “8월 9일부터 수수료율을 6.8%에서 9.8%로 올린다”고 발표하면서 협의체를 주도하는 공정위가 체면을 구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3사의 수수료율이 9.7~9.8%로 수렴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4일 다섯 번째 협의체가 열리기까지 배달 앱 운영사들은 수수료 부담 완화 방안, 수수료 산정 방식의 투명성 제고 등 핵심 주제를 둘러싸고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달 말까지 두 차례 추가 회의가 열리고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 협의체가 빈손으로 해산될 상황이다.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공정위의 늑장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정위는 구글·애플·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을 미리 독과점 사업자로 지정해 끼워 팔기나 자사 우대 같은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사전 지정제’ 도입을 작년 12월부터 추진했지만, 이달 초 “업계 반발이 컸다”며 ‘사후 추정제’로 바꾸기로 했다. 독과점 플랫폼의 반칙 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준을 넘어서면 ‘지배적 플랫폼’으로 추정해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최혜(最惠) 대우

음식 배달 앱 업체가 메뉴 가격이나 할인 행사 수준, 최소 주문 금액 등 각종 조건을 경쟁 배달 앱과 같거나 유리하게 맞춰 달라고 음식점에 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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