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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궁지 몰린 헤즈볼라, 붕괴할까···“더 급진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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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사망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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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세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비롯해 최고위급 지휘관들이 연달아 피살되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비국가 무장단체로 꼽히는 헤즈볼라는 1982년 창설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과거 사례에 비춰 보면 이런 암살 작전이 무장단체를 궤멸시키거나 힘을 약화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들이 급진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전역에 강도 높은 폭격을 퍼붓기 시작한 지난 23일 이후 일주일간 살해된 헤즈볼라 최고위급 인사는 나스랄라를 포함해 최소 7명에 이른다.

헤즈볼라 최정예 라드완 부대를 이끈 최고 사령관 이브라힘 라킬과 또 다른 핵심 사령관인 아마드 웨흐베, 헤즈볼라 중앙위원회 부의장 나빌 카욱, 무인기(드론) 부대 수장 모하메드 수루르, 미사일 부대를 이끈 이브라힘 쿠바이시 등 수뇌부가 이스라엘군의 표적 공격에 줄줄이 폭사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17~18일 헤즈볼라의 통신 수단인 무선호출기(삐삐)와 무전기를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시켜 하급 대원들을 공격하고 통신망을 파괴한 데 이어, 지난 27일엔 폭탄 100여개를 쏟아부어 1인자를 암살하는 등 숨 가쁘게 헤즈볼라를 압박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 강도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헤즈볼라 군사력에 대한 ‘환상’이 산산조각 났다”는 평가(워싱턴포스트)도 나온다. 이란을 주축으로 한 반미·반이스라엘 연대인 ‘저항의 축’의 맏형 격이자 레바논 정부를 압도하는 무장세력으로서 헤즈볼라의 위상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조직의 42년 역사에서 32년간 조직을 이끌어온 1인자를 잃은 헤즈볼라는 강력한 보복을 예고했으나, 이스라엘군 공습에 무기고 등이 초토화돼 강도 높은 보복을 단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찍힌다. 최근 헤즈볼라는 국경지대를 넘어 이스라엘 영토 깊숙이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으나, 이스라엘군 방공망에 대부분 요격돼 피해를 거의 입히지 못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헤즈볼라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어도, 장기적으로는 지도부 제거 작전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전에도 헤즈볼라와 하마스 지도자들을 여러 차례 암살했으나, 이들 무장조직이 대를 이어 계속 영향력을 확장해 왔다는 것이다.

때로는 지도자 살해에 대한 분노가 조직을 더 급진화시키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2004년 3월 하마스 창시자이자 최고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암살한 데 이어 한 달 뒤에는 후임인 압델 아지즈 란티시까지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하마스는 붕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이은 암살 후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인 1200명을 살해한 기습 공격을 단행했다.

나스랄라의 후임자로 임명된 하심 사피에딘이 나스랄라보다 더 급진적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미 CNN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간 테러 집단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도부를 ‘표적 살해’하는 데 공을 들였으나 조직을 궤멸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더 긴 싸움이 이어졌다고 짚었다. 일례로 이라크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2006년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테러 세력이 붕괴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이후 더 잔혹한 인물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후계자로 부상하며 8년 후 역사상 최악의 테러단체로 꼽히는 이슬람국가(IS)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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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폭사한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공습 현장에 헤즈볼라 깃발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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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북아프리카 책임자인 사남 바킬은 “헤즈볼라는 군사적으로나 전술적으로 분명 약화됐다”면서도 “다만 주의할 점은 헤즈볼라와 하마스 모두 약해지더라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싸움이 계속된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또 다른 세대의 전사들이 동원되거나 조직이 급진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원로 언론인인 잭 쿠리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기고한 칼럼에서 “(암살된 지도자들의) 대체자들은 더 온건하거나 덜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전문가인 필립 스미스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대체할 세력이 없으며 조직 규모와 자금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헤즈볼라의 몰락을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카네기중동센터의 모하나드 하게 알리는 “시아파 무슬림들은 여전히 헤즈볼라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할 것이며 나스랄라를 ‘이스라엘군을 몰아냈던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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