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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기억할 오늘] 1965년 인니에서 빚어진 좌파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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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인도네시아 1965 대학살- 2
한국일보

'9월 30일 운동' 즉 인도네시아 우익 정치군인들에 의해 희생된 수카르노 정권 고위 군인들 추모비. 제임스 스콧은 저 거대한 역사 기념물에 담긴 사연들을 대체로 하찮게 여겼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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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정치학자 제임스 스콧은 1950년대 말 로터리 펠로십으로 1년간 미얀마(당시 버마) 현장 연구를 진행하면서 동남아시아 정치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권위주의 정부에 저항한 현지 학생운동에 간접적으로 개입했고, 관련 정보로 CIA에 협력함으로써 그 덕에 프랑스 파리 유학 기회를 얻기도 했다. 어쩌면 그의 연구 배경에는, 전후 민족주의-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뿐 아니라 권력 언저리 인간들에 대한 환멸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전형적인 사태 중 하나가 그의 레이더 권역 안에 있었을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이었다. 자칭 ‘9월 30일 운동(30 September Movement)’이라 명명한 수하르토 등 우파 정치군인들의 수카르노 정권에 대한 사실상의 쿠데타와 좌파에 대한 대규모 집단 학살 사태였다.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 수카르노는 45년 독립-집권과 동시에 소위 ‘건국 5원칙(Pancasila)’을 천명했다. 민족적 단합과 다종교 화합, 대의제 민주주의, 정의와 인본주의, 사회정의였다. 그는 군부와 무슬림 단체, 공산당의 불안정한 연합 즉 ‘나사콤(Nasakom)’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상정했다.

하지만 수카르노 정권은 55년 반둥회의 등 비동맹국회의를 이끌며 인도네시아 공산당(PKI) 등 좌파와 가까워졌고 공산당-혁명주의를 공개 칭송하며 중국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가 미국-영국을 뒷배로 둔 수하르토 군부의 65년 10월 학살이었다. 쿠데타 권력은 66년 초까지 공산당원과 좌파 활동가 및 동조자 등 최소 50만 명, 최대 200만 명을 학살했다. 30년대 스탈린의 숙청, 2차대전 나치 홀로코스트, 50년대 마오쩌둥의 인민 학살에 버금가는 20세기 최악의 집단 학살이었다.

저 피바다 위에 67년 출범한 수하르토 정권은 IMF 사태 직후인 98년 몰락할 때까지 이어졌고, 65년 학살의 진실은 2014년 비군인 출신 정치인 조코 위도도가 집권하고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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