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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레버리지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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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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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택자 입장에서는 주택 가격이 오르면 오히려 소비를 늘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택 가격 상승의 문제점을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 제약 측면에서만 보는 것은 설득력이 높지 않을 수 있다. 당행의 정책 목표는 아니지만 자산 불평등, 국민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 효율성 측면에서 주택 가격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사록 중 한 대목이다. '가계 빚의 과도한 증가로 경제 주체가 빚에 허덕여 소비를 줄이고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던 때였다. 부동산과 가계 빚을 성장이 아닌 불평등의 문제로 보는 한 위원의 관점이 '통찰'로 느껴졌던 이유다.

가치 상승이 보장된 자산을 획득하기 위해 빚내는 행위, 레버리지(leverage)는 '가진 자'의 전유물이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잠실로 이사 가는 K는 부부 모두 굴지의 대기업에 다닌다. 부담되더라도 수억 원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강남 3구 진입이 가능한 재력을 지녔다는 뜻이다. 10억 원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았다는 P의 지인은 '금수저'로 태어난 데다 부부가 모두 건실한 직장에 다닌다고 한다. 추석 연휴가 낀 지난달마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8조 원가량 늘어난 배경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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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레버리지를 꿈꾸지 못하는 이들에게 빚은 생존 위협이 되기도 한다. '금리 인상→당국 엄포→한도 축소'로 이어진 은행의 시끌벅적 가계대출 문턱 높이기에 8월 카드론 규모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로 불어났다. '풍선 효과'다. 높은 이자 부담을 마다 않고 급전을 당긴 결과는 부실이다. 8월 카드론 연체 금액 1조3,720억 원은 카드론 사태(2003, 2004년)를 제외하고 가장 많았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이 월 100만 원을 못 버는 현실 속,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의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어느덧 10%를 웃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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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리지가 남 얘기인 것은 사회초년생도 마찬가지다. 고향에서 부모님과 사는 아홉 살 터울 만년 대학 4학년 막냇동생에게 레버리지에 대해 물었다. "투자 안 함. 친구들도 주식, 코인에 몇 십만 원 정도 넣고 다 꼻던(잃던)데. 그냥 재미로 로또 사듯이 함. 자기 관리 비용 빼면 남는 돈 없음."

'레버리지 불평등'. 금융 불안이라는 용어에 파묻혀 지극한 상식을 잊고 있었다. 사실 한은은 작년에도 가계부채가 자산불평등 확대에 기여한다는 논지의 실증 보고서1를 내고, 2017~2022년 가계부채 보유 가구의 자산은 대출 없는 가구보다 1.4배 더 많은 약 1억200만 원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빚낼 수 있는 사람은 빚을 지렛대로 자산을 증식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빚이 부실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게 은행 가계대출 관리 경쟁에 가려진 우리 현실이다.

시장은 올해 1회, 내년 2회에 걸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금리가 내리면 취약계층 살림살이는 나아질까. 장담할 수 없다. 위 보고서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자산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세계 학자들의 상반된 견해를 전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금리인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얘기다. 부채 양을 줄이는 동시에 취약층 부채의 질을 관리해 주는 정책의 병행, 이 일은 결국 정부의 몫이다.
1 보고서
이경태·강환구(2023).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본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및 연착륙 방안. BOK 이슈노트, 2023-22호. 한국은행.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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