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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슈 시위와 파업

'윤활유 방진복' 입고 농성…"시위 근로자만 중한가" 판사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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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5월 23일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공성·노동권 확대와 국가 책임 예산·일자리 쟁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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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간부 4명, 항소심서 일부 감형



운임 인상 등을 요구하며 노조원들에게 가연성 물질을 바른 작업복을 입게 하고 화물차 운행을 방해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간부 4명 중 일부가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이미 비슷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처벌받은 게 영향을 줬다. 그러나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주최한 시위에 참여한 근로자뿐 아니라 사업주나 다른 근로자 인권과 생존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며 "권리를 주장하고 단체 행동을 하더라도 법률이 정한 범위에서 합법적으로 해야 한다"고 꾸짖었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전주지법 형사1부는 지난달 25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에 3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화물연대 전북본부장 A씨(50)와 전주지부장 B씨(62)의 원심 판결을 깨고 징역 6개월과 징역 4개월에 각각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각각 80시간, 40시간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화물연대 산하 참프레지회장 C씨(48)와 참프레지회 조직차장 D씨(45)에 대해선 "양형이 적절해 보인다"며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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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전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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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공장 출입 막아



A씨 등은 2022년 7월 1일부터 23일까지 전북 부안 참프레 공장 후문 앞 도로에서 연좌 농성을 하며 생닭 운송 화물차 진·출입을 막고 불법 집회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부안에 본사를 둔 참프레는 닭고기 등 축산물을 생산·저장·가공·유통하는 회사다.

당시 화물연대 참프레지회 노동자 47명은 ▶자동차 매매 간섭 금지 ▶운임료 인상 ▶회차비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이들은 전북을 비롯해 전남·충남·경남 지역 농가에서 키운 육계를 참프레로 실어 나르는 업무 등을 했다.

조사 결과 참프레지회 조합원 20여명은 윤활유를 바른 방진복을 착용한 채 농성에 참여했다. A씨는 방진복을 입지 않은 조합원 10명가량도 그 옆에 앉아 함께 농성하도록 지시했다. 회사 측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최소 100억 원 이상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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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서울역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국토교통부는 죽음의 도로를 방치하고, 안전 운임을 폐기했다"며 총력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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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벗어난 집회…재산 피해"



A씨는 경찰에 신고한 집회 장소를 수차례 벗어나 조합원에게 공장 후문 출입구를 막고 농성을 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집회 장소를 벗어났다'는 경찰 경고를 무시하거나 조합원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집회 주최자로서 누구보다 준수 사항을 지켜야 하는 지위에 있는데도 신고 범위를 벗어난 질서 문란 행위를 했으므로 죄질이 불량하고, 이로 인해 회사는 상당한 재산상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A·B씨는 이 판결 전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그 판결이 확정된 사정 등을 고려해 1심 판결을 파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 판결 이후에 이런 행위를 했다면 재판부에선 이보다 훨씬 엄한 처벌을 검토했을 것"이라고 했다.

A·B씨는 2022년 7월 22일 군산시 오식도동 참프레 사료공장에 몰래 들어가 30m 높이 저장고에서 6일간 고공 농성을 한 혐의(공동주거침입) 등으로 기소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전주지법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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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연 '안전운임제 재입법과 지입제 폐지를 위한 화물연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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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 "모든 생존권 존중받아야"



김상곤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에 앞서 "피고인들은 이 같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근로자 생존권을 주장한다"며 "그러나 모든 인간의 생존권은 존중받아야 한다. 근로자라고 특별히 우대받거나 사용자라고 가볍게 무시당할 것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장은 사업주만을 위한 게 아니다. 수많은 근로자가 일하고, 공장 관련 납품을 하거나 받아야 하는 근로자도 있다"고 했다.

특히 김 부장판사는 농성에 윤활유를 이용한 점을 질책했다. 그는 "자칫 감정이 격해지면 분신 사고 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참여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며 "책임 있는 위치라면 더더욱 그런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노동 투쟁을 해야 한다. 피고인들 활동과 주장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편 A씨 등이 주도한 파업은 2022년 7월 27일 사측과 노조가 139억 원 손해배상 청구 철회와 차량 매매 간섭 금지, 임금 2% 인상 등에 합의하면서 끝났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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