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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책상서 죽은 청년이 전했나…툭 떨어진 '소름돋는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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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더중앙플러스-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죽음 앞에선 모두 공평하다고 말하는 건 아무것도 들고 갈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지, 죽는 그 순간의 모습은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지켜 봐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떠나고 싶은 인간은 없습니다. “내 마지막을 고독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는 말합니다.

이번에도 그는 씁쓸한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 기댄 건 다름아닌 술이었습니다. 술독에 빠진 그들의 비극, 더중앙플러스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 기사 한편을 무료로 소개합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나를 만든다지만, 온전하게 ‘나’의 기억이란 게 있을까.

내가 겪고도 까맣게 잊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그 일을 당사자는 거짓말처럼 떠올리지 못한다.

내 머릿속에 박제돼 평생을 괴롭히는 기억은 순전한 것일까.

나만 기억하고 아무도 모른다면 그런 일은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것일까.

그런 혼돈이 잠시 찾아왔던 사건이었다.

가족의 의뢰였다.

30대 초반 청년이 숨진 오피스텔.

사후 3일 만에 발견됐다고 하니 오래도록 왕래가 끊긴 그런 관계도 아닌 듯했다.

아니….

자살일지도 몰랐다.

젊은 나이에 극단 선택을 하는 이들은 직전에 많은 신호를 남긴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놀라서 찾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양치기 소년’처럼 되는데,

슬픈 건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이 그랬듯 그들도 모든 걸 잃는다.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다.

그런 의뢰를 받으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매캐한 냄새를 찾는다.

좁은 공간에서도 연신 눈동자도 굴린다.

몹쓸 그것의 흔적이 있나 싶어서다.

이번 현장은 긴가민가했다.

젊은 남성 혼자 살았던 오피스텔은 평범했다.

죽은 자의 공간이라니까 어수선해 보일 뿐이다.

시신이 방치된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으니 부패가 심각한 수준도 아니었다.

쓸 만한 물건들은 전부 유가족이 가지고 간 상태였다.

듬성듬성 물건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았다.

버려지는 것보단 누군가가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

고인이 사용하던 모든 물품이 전부 버려져야 하는 현장들보단 뭐…,

조금은 덜 씁쓸하달까.

젊은 친구가 술은 참 많이도 마셨다.

소주병이며 맥주 캔이며 그때그때 버리지 않고 잔뜩 쌓아뒀다.

챙강챙강 소리를 내며 검은 비닐에 담아내고 있는데 책장에서 뭔가 떼구르르 하고 떨어져 굴렀다.

플라스틱 약통이었다.

“아직 나이가 젊어도 이렇게 술을 마시니 안 아픈 게 이상하지….”

고독사의 주인공들은 다들 아프다.

마음도 몸도 병들어 있다.

내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치우는 게 약봉지며 약통이다.

호기심에 눈여겨보다 보니 나도 웬만한 약품은 이름까지 익숙하다.

대부분 위나 간·혈압에 관련된 약들이다 보니 뻔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 발견한 약통은 낯설었다.

찾아보니 뇌전증에 관련된 약이었다.

아….

평범해 보였던 유품 속에서 뭔가 사연이 읽히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병인데….”

약통이 떨어진 책장엔 학위증이 꽂혀 있었다.

내가 알기론 수원에 있는 꽤 좋은 대학교였다.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때 약을 복용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이라고 안다.

그런데 불안감과 우울증도 동반하는 질병이라니.

다 큰 자식이었다고는 해도 큰병을 떠안고 사는 자식을 이렇게 홀로 뒀어야만 했을까.

더구나 끼니도 제대로 안 챙기고 술을 마셔댔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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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던 채로 생을 마감했다.

정확한 사인은 내가 뭐라 추측하기 어려웠다.

유족들도 별말이 없었다.

말하기 전에 묻는 건 실례다.

궁금했지만 참는다.

‘내가 이 가족의 사정을 전부 아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뇌전증 약통에서 이어져 책장을 정리하는데 이번엔 노트가 툭 떨어졌다.

이럴 땐 가끔 뒷목이 싸늘하고 소름이 돋는다.

꼭 고인이 내가 봐주기라도 바란 듯 뭔가 떨궈놓는 것 같다.

공책을 펼쳐보니 사이에 뭔가를 메모해 놓은 종이가 보였다.

정신과 상담? 분석?

글씨를 무척 흘려 써 알아보기 힘들었다.

드문드문 상담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

시험 성적을 속였다.

거짓말은 들통났고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오랫동안 괴로웠다.’

글세.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청년은 왜 이 기억에 그토록 오래 사로잡혀 있었을까.

고인은 숨지기 넉 달 전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고 한다.

얼굴이 깨져 성형외과 수술도 받았다.

몸도 마음도 성한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의지할 곳도 없었나 보다.

가족이 있었는데도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혼자 지냈던 것을 보면.

고인이 생각하는 인생은 어땠을까.

그에게 가장 큰 불행이 무엇이었을지 모르겠다.

유년의 그 기억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는 생의 대부분을 아파했던 것 같다.

유품은 유족에게 전해야 하지만 그 정신 상담 메모를 전할 순 없었다.

누군가 또 나머지 생을 아파할까봐.

가슴이 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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