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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단독] 요양보호사 불렀더니 5060 남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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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하는 일’은 옛말… 男 요양사 5년간 73% 늘어

조선일보

울산시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에서 남성 요양보호사 30여 명이 ‘직무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날 강의를 들은 한 남성 요양보호사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후에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추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했다. /울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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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다니던 회사를 정년 퇴직한 남성 이은선(62·경기 의정부)씨는 지난 8일부터 의정부의 한 요양보호사학원을 다니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20~30년은 더 살 텐데 정년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요양보호사인 처제의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처음엔 ‘남자가 무슨 요양보호사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을 돕거나 때론 용변까지 처리해줘야 하는 요양보호사 일이 여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 요양보호사가 요즘 늘고 있다”는 주변 권유에 이씨는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씨가 다니는 요양보호사학원의 남성 수강생 숫자는 전체의 20%다. 이씨는 “중풍이 심한 90대 장모, 함께 나이 들어갈 아내를 전문적으로 돌보기 위해서도 내가 자격증을 공부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A 요양보호사학원은 “작년까지만 해도 한 반 교육생 25명 중 남성은 2명 정도였지만 올해 들어 6~7명 정도까지 늘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5060남성들이 요양보호업계에 뛰어들고 있다. 은퇴한 5060남성들은 그간 자영업이나 건물 관리직(경비), 택배나 택시 운전 같은 분야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곤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현업 남성 요양보호사 수는 2020년 2만4538명에서 지난 8월 기준 4만2672명으로 73%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수도 2020년 17만7051명에서 지난 7월 기준 30만4724명으로 72% 증가했다.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초기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경기도에서 활동 중인 한 60대 남성 요양 보호사는 “자영업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창업 비용이 드는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망하기 딱 좋다”고 했다. 일선 요양보호사 학원 수강료는 80만~90만원 수준이고, 향후 취업하면 국가가 전액 환급해준다. 320시간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합격률은 90%에 육박한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5060 남성도 적잖다. 은퇴자 허영선(63·경기 남양주)씨는 지난해 1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허씨는 “뇌졸중에 걸린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비용도 많이 들 뿐더러 남의 손에 부모님을 맡기기도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격증 취득 이후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가족요양급여 제도를 통해 시급 1만1000원 하루 3시간, 한 달 27일에 대한 급여 90만원을 수령한다. 몸이 편찮은 가족을 집에서 돌보고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간 근무가 잦은 경비 업무나 사고 위험이 적잖은 택시·건설·택배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도 5060 남성들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일부 5060 남성은 노인 요양원 창업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사업가 김모(66)씨는 “향후 요양 산업이 유망할 것으로 판단돼 내가 직접 이 업의 속성을 알아보기 위해 자격증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노인장기 요양 등급자는 올해 105만명에서 2050년 297만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일선 요양업계에선 5060 남성 요양보호사의 유입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요양병원장은 “남성 노인들은 여성 요양보호사가 목욕을 시켜주거나 용변을 처리하는 일을 불편하게 여기곤 한다”며 “비교적 근력이 좋은 남성 요양보호사가 현장에서 환영받고 있다”고 했다. 일선 남성 요양보호사들은 “여성 요양보호사보다 훨씬 쉽게 구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가정 방문 요양을 받는 남성 노인들에게 성희롱·성추행 등을 당하는 여성 요양보호사 문제도 5060 남성 요양보호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다만 올해 8월 기준 66만8309명인 전체 요양보호사 중 남성은 아직 4만2672명(6.3%)에 불과한 실정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고령화로 요양보호업 수요가 늘고 국가 재정 지원도 증가할 전망”이라며 “요양보호사 처우가 과거보다 나아지면서 5060 남성들의 유입도 향후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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