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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세요"... 특수교사가 흔히 하는 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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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현주] 한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왔다.

뽀얀 피부에 초롱한 눈, 4살 아이는 어린이집 현관에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얼른 가서 안아 신발을 벗겼다. 어머니는 애써 침착하려는 듯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이곳 저곳을 뛰어 다녔다.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해야 했기에 아버지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원장실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큰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어 모방행동으로 그러는 것일 뿐 둘째 아이는 장애가 아닐 것이라 했다. 말이 조금 느리나, 조금 더 지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를 입소시키려는 이유는, 오빠가 장애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그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아프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내가 본 그 아이는 발달장애였다. 오만하고 거만한 의사들처럼, 5분도 채 아이를 보지 않고 "딱 봐도 장애네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4살이었던 아이는 신발 벗고 실내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손을 잡아 끌자 소리를 지르며 거부했다. 아이는 내가 안으려 해도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고 버둥대었다. 아이의 바로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눈을 바라보아도 눈동자를 이리 저리 피하기만 했다.

자폐스펙트럼일수도 있으나, 큰아이의 발달장애를 이제 막 알게 된 어머니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어머니가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무겁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에게 아이가 장애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이어갔다. 더군다나 큰 아이의 장애를 이제 막 직면한 이 가족에게, "당신의 둘째 아이도 장애가 분명합니다"라고 상처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분명 실외 활동을 하거나, 실내에서 착석된 수업을 할 때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그냥 아이를 받게 되면 7~9명 정도를 돌보는 비장애아반 교사가 이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부모는 '내 아이가 (아직) 장애는 아니지만,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고, 장애아반 입소에도 동의했다.

현장에서 특수교사가 하는 가장 많은 질문들, 그리고 실수들 중 하나는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애를 인정하고 오는 가족은 편하다. 부가적으로 설명할 것이 없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베이비뉴스

울고 있는 아이.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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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님들이 장애전담 혹은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찾을 때는 내 아이에 대한 물음표 하나는 가지고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 자체가 고민의 흔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입소 대기가 걸려있는 아이들의 부모와 상담을 하다보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

"우리기관이 장애통합기관인 것은 아시죠? 그래서 여쭤보는데, 아이가 언어치료를 받고 있거나, 말이 또래보다 늦거나, 감각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그러지는 않은가요?"

대부분의 부모는, "우리 아이가 말은 늦지만 장애는 아니에요", "언어치료는 받고 있지만 장애는 아니에요", "감각통합선생님이 자폐성향은 있다고 했지만 장애는 아니에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아이의 입학과 배제를 확정짓기라도 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부모도 있고, 내 아이를 보지도 않고 언어치료를 받으면 다 장애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냐며 큰 소리 치는 부모도 있다. 물론 끝까지 숨기는 부모도 있다.

장애가 아니라고 끝까지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부모를 통해 어느 어느 치료실을 다녔고, 어느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는 등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왜 솔직하게 말씀하시지 않느냐 물으면 대부분 "내 아이가 차별 받을까봐" 혹은 "인정하기 두려워서"라는 답을 듣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이 교사 입장에서 부모를 더 불신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부모들은 잘 모른다.

교사들이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면에 살펴봐야 할 것은 그 부모 개인에 대한 배신감 이전에, 우리 사회가 그 어머니를 어떤 "장애" 경험을 가지게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그 가족은 아이를 데리고 아이의 느림, 혹은 다름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속을 털어 놓고 이야기해 보았을 수도 있다. 어떤 반응을 경험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아이의 느림을 걱정하며 찾은 병원에서 고가의 검사비를 내고 검사를 했을 때, 그래서 이후 아이를 이렇게 이렇게 키우고 지원하면 됩니다. 이후에는 이렇게 자랄 겁니다.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딱 봐도 자폐네요", "네 지적장애네요. 치료실 다니세요" 이 정도의 피드백, 아이의 고민을 어른들에게 했을 때는 "우리 집안에는 이런 애 없다", "여자하나 잘 못 들어와서 아들 인생을 망치는구나" 원망어린 시어머니의 어이없는 질책.

아이 손을 잡고 찾은 첫 보육기관에 와서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기 않고 애써 거부하는 부모를 만났을 때 먼저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은, 여기까지 오기까지 '아이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받았을까.’ 하는 공감적 태도이다.

그래서 사실 유아기의 가족에게 "당신의 아이가 장애라고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유아기 특수 교사 모임에 가면 인정하지 않는 부모가 제일 힘들다라는 불평을 많이 듣는다. 아이의 부모가 무엇을 인정하지 않는지 물으면, "아이가 장애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울 때, 목표의 달성과 실패를 판가름 하는 기준을 얼마나 작은 단위로 분석해 나누어 제시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작게 나누어진 과제는 아이에게 성공감을 준다. 한 번, 두 번 모이다 보면 아이는 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

나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말이 "장애의 인정"이지, 그 과정은 피를 말리고 살을 깍은 아픔과 혼란이 늘 함께 한다. 유아기 엄마들에게, 장애를 처음 만난 부모들에게 아주 큰 목표의 단위로 "장애의 인정"을 강요하는 교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유아기 부모가 인정해야 할 것은, 내 아이가 지금 착석이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식습관을 가정에서도 기관에서도 훈련시키기 어려워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아이가 말이 아직 안 터져서 언어치료가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 현장학습을 갈 때 별도의 자원봉사자의 지원이 있으면 이 아이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 배변 연습을 할 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 이런 유형의 고민 정도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들이 하나 둘 쌓이면 "내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는 시기가 온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구나. 인정하는 시기가 온다. 조금씩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굳이 우리가 네 살, 다섯 살된 아이들에게 "이 아이는 장애가 있어서 장애아반으로 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아이는 조금 더 많은 지원이 보장되면 잘 키울 수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장애아반으로 안내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듯, 부모도 자란다. 유아기 부모들을 설명할 때, "아무리 설명해도 귓구멍에 들어가지 않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단계를 나누고 교육과정을 계획해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장애 아이들이 개별성이 강하듯 부모의 장애 수용 정도도 매우 다르다.

유아기 부모 중에서 아이를 온전히 수용하고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사회 운동을 하거나 정책 변화에 참여하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는 특수교사들이 "부모가 인정을 안 하면 가르치기 힘들다"라는 불만은 "부모가 인정할 수 있는 스몰스텝으로 나눈 아이를 제시하세요"라고 바꿔서 말씀드린다. 장애의 유형, 장애의 정도,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해 안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필요한 지원의 정도로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는 착석과 수업에 참여하기가 어려워 교재를 수정해주면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발 신기를 단계를 나누어 제시하면 할 수 있어요' 같은 조언을 하고 그런 조금 더 체계적인 지원을 받기위해 장애아반에 입소하는 것이지, '장애아’라서 입소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 버렸으면 한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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