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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거울이자 창문이 되는 책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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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지난 9월 말, 포항에서 열렸다. 특히 올해는 어린이 해방 100년을 기념한 콘퍼런스가 열렸고, 그중 하나의 주제는 ‘어린이 책, 금기를 넘다. 다양한 어린이를 만나다’였다. 2020년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이 개신교와 보수 정치인에 의해 좌초되고, 2023년엔 충남지역 도서관에서 성평등과 성교육 관련 어린이책이 검열을 당해 사라지고, 올해는 경기지역 학교에서만 성교육 도서 2500권이 폐기되는 등 ‘금서’가 어린이책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살피는 자리였다.



‘금기’를 넘어 어린이책이 지금보다 더 다양해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의 저명한 아동문학 연구자인 루딘 심스 비숍 교수는 1990년에 ‘거울, 창문 그리고 미닫이 유리문’이란 글로 그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책이란 거울처럼 읽는 이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하고, 창문처럼 다른 사람의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며, 미닫이 유리문처럼 독자가 상상의 힘으로 저자가 만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샐러드 그릇과 같은 나라면서도 지나치게 백인 중심적이어서 흑인, 원주민과 유색 인종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자신과 닮은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음도 지적했다. 자라나면서 자신을 비추는 거울 책을 접하지 못하고 산다는 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감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어린이책의 제작자들은 누구든 그 앞에 설 수 있는 거울과 창문 같은 책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 사서들과 교육자들은 어린이들에게 다른 세계로 오갈 수 있는 유리문으로 책이 작동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현재 미국이든 한국이든 금서 딱지가 붙는 일순위는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책이다. 동성애에 대해 다루는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정말 위험할까?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는 이미 성인인 채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기로 태어나서 아동과 청소년기를 지난다. 이들에게도 자신을 들여다볼 거울책이 필요하다. 비성소수자들에겐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창문책이 필요하다. 거울이자 창문이 되는 책은 어느새 미닫이 유리문이 되어 서로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지를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 비숍 교수는 “모든 어린이에게 거울과 창문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 충분히 있으면, 그들은 우리가 우리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모두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고 이성애자 어린이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건 위험이 아니라 축하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다.



어린이책은 다양해야 한다. 책을 검열하는 힘을 어른들이 가지고 있기에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는 어른들은 어린이를 마음대로 통제하려 할 테고 그 힘을 남용할 테니까. 역으로 어린이책이 다양하다는 건 그 사회는 어린이도 동료 시민으로 존중받는 곳이란 의미다. 즉 누구든 소외되지 않고 태어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일 터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금서를 비치하면 사서를 징역형에 처하는 법이 제정되고, 심지어 ‘다양성’이란 단어를 학교에서 금지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어린이책이 다양하도록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통제당하는 건 결코 어린이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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