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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책&생각] 부패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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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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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 尹愭 , 1741-1826) 는 ‘ 정상한화 ( 井上閒話)’ 란 에세이집에서 19 세기 이후 과거와 벼슬에 대해 희한한 말을 한다 . 곧 빈천 ( 貧賤 ) 한 집안 출신은 실수 혹은 우연에 의해서라도 과거에 합격하거나 관직을 얻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 과거 합격자와 관직을 얻는 자는 경화세족 ( 京華世族 ) 뿐이다 . 왜냐 ? 과거 답안지의 채점은 이름과 출신을 쓴 부분은 가리고 하는 것이 원칙이다 . 하지만 미리 짜고 본문에 채점관이 알 수 있는 암호를 표시해 놓는다 . 합격은 떼어놓은 당상이다 . 합격 뒤 첫 벼슬을 하면 이후 정해진 코스로 출세한다 . 사관 ( 史官 ) 을 거쳐 승지가 되고 , 이어 성균관 대사성 , 관찰사 , 홍문관· 예문관 제학 ( 提學 ), 육조 ( 六曹 ) 의 판서를 거쳐 영의정·좌의정· 우의정이 된다 . 이러니 19 세기 이후 과거와 관직을 말하는 자리에서 ‘ 공정 ’ 은 개에게나 줄 것이 되고 말았다 .



과거 합격과 초입사 ( 初入仕 ) 는 문벌 ( 門閥 ) 에 의해 결정되지만 , 이후의 출세에는 다른 것도 필요하다 . 곧 돈이다 . 윤기는 이렇게 말한다 .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가 인사권자에게 미리 돈을 바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 관리가 된 뒤에도 오직 돈에 의해 인사이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부사 , 군수 , 현감 등 지방 수령 자리는 해당 지방의 풍요함과 척박함에 따라 가격이 정해져 있다 . 물산이 풍부한 고을 수령 자리는 비싸다 . 돈을 실어다 바치고 그 자리를 산다 . 부임해 백성을 한창 쥐어짜고 있는데 정기 인사이동 있어 다른 곳으로 가란다 . 잽싸게 관찰사나 재상에게 다시 돈을 실어 보내면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 있게 해 준다 . 반대의 경우도 있다 . 가보니 쥐어짤 만한 것이 없다 . 그러면 역시 돈을 바치고 빨리 다른 자리로 간다 . 이렇게 모든 벼슬은 돈이 먼저다 . 그래서 벼슬하는 자를 선전관 ( 先錢官 ) 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



윤기는 ‘도목정사 뒤에 농담 한마디 해 본다’ ( 臘月都政後戱吟 ) 라는 제목의 시를 짓는데 , ‘ 도목정사 ’ 는 6 월과 12 월에 있는 관리의 정기 인사행정이다 ( 여기서는 12 월 ). 모두 6 수인데 세 번째 작품은 이렇다 . “ 이부상서 ( 吏部尙書 ) 가 손수 인사의 저울대를 잡으니 / 나라의 벼슬은 모두 그의 손바닥에 있다네 / 미소 띤 ‘ 대제 ( 大堤 ) 의 여자 ’ 인 양 / 어두운 밤 사람을 부르는 것은 , 오직 돈을 좋아해서지 .” 이부상서는 이조판서다 . 이조판서는 문관직( 文官職) 의 인사권을 갖는다 . ‘ 대제의 여자 ’ 에서 ‘ 대제 ’ 는 창녀( 娼女) 가 있던 곳이다 . 이조판서가 창녀처럼 웃는 얼굴로 한밤중에 사람을 부르는 것은 오직 돈을 밝혀서라는 것이다 . 이게 매관매직으로 일관한 19 세기 관계( 官界) 의 실상이었다 .



지난 글에서 고종과 민비의 매관매직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 그것은 사실상 19 세기 관변 부패문화의 연장이다 . 고종과 민비가 어디서 배웠겠는가 ? 국회의원 공천과 세비를 둘러싼 최근의 사건을 보건대 , 이 부패문화는 오늘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 돈만이 아니다 . 멀쩡히 생긴 분들이 , 많이 배운 분들이 , 남들이 오르지 못한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이 , 되먹잖은 말로 권력자의 부패를 비호하며 돈 대신 ‘ 아첨 ’ 을 바치는 것을 보면 , 세상 달라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 정말이지 지겹기조차 하다 ! 연면히 이어지는 이 유구한 ‘ 부패의 전통 ’ 을 지금 쓸어버리지 않는다면 , 대한민국은 앞으로 별 희망이 없을 것이다 .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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