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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천장만 보는 사회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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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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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지난 8월, 뜬금없이 한국은행이 대학입시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는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가 학생의 잠재력보다 소득계층, 거주지역 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주로 설명된다”며, 과도한 입시경쟁이 “저출산과 만혼,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집값 상승 등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응 방안은 ‘지역별 비례선발제’였다. 일부 상위권대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입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콕 집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결단”을 요청하고 나섰다.



일목요연한 보고서이고 대안도 일리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얘기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진학률 격차 원인이 사회경제적 배경임을 보인 연구는 이미 많았다. 과거 서울대가 시행한 지역균형·기회균형 전형도 유사한 취지였다. 오히려 놀란 건 사회적 반응이다. 사람들은 마치 처음 들은 얘기인 양 경악했다. 진보적인 이들은 더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동적인 개천 용 사회 한국이 어쩌다 이런 세습 사회가 됐나!” 그러나 보고서와 그에 대한 반응은, 선의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비켜나 있다.



한은 보고서는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른 상위권대 진학률의 격차를 지적하면서도, 상위권대 출신자와 비상위권대, 대학 비진학자 간의 훨씬 더 심각한 격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피라미드 천장’ 진입의 불공정만 문제 삼을 뿐, ‘피라미드 자체’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물론 한은은 입시경쟁 과열을 문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므로 경쟁이 과열되는 대학을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저출생, 수도권 인구와 집값, 나아가 청소년 정신건강까지 포함하는 “구조적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명시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 천장’ 일부를 교체하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유리천장’이란 말은 알려졌다시피 ‘능력과 자격이 있음에도 여성이거나 소수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한다. 유리천장은 실재하며 이를 없애는 일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결국 최상층·엘리트 중심 담론이라는 점에서 한계 역시 명확하다. 언론을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가 이런 ‘천장 편향’에 빠져 있다. 천장 편향은 인지 오류의 하나인 ‘생존 편향’(생존한 개체에만 집중하고 생존하지 못한 개체를 간과하는 경향)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생존 편향이 ‘알지 못한’ 것이라면 천장 편향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깝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개천 용’ 신화도 천장 편향이다. 일단 ‘용’만 되면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므로 모두가 어떻게 ‘용’이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경쟁(주로 시험)의 보상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제도 해킹’ 또한 만연한다. 이런 사회는 공정을 외치고 불공정을 규탄하기에 언뜻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은 승자독식과 부정부패가 끝없이 악순환하는 불평등 지옥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은 보고서는 입시경쟁을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입시경쟁은 또한 사회문제의 ‘결과’이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입시경쟁과 사회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배경 요인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제도이자 문화로서 ‘능력주의 체제’다. 그렇다. 문제는 다시 능력주의다. 그리고 해결은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개천’에 대한 염려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반드시 ‘용’의 특권 축소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용의 몫을 줄이지 않으면 ‘개천’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조선 성종 때 선비 김효흥은 76살에, 고종 때 선비 박문규는 83살에, 철종 때 선비 김재봉은 무려 90살에 과거에 급제했다. 전체 문과 급제자의 61.5퍼센트가 한양과 경기도 출신이었다(‘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소득계층, 거주지역은 당시에도 급제의 결정적 변수였다. 만일 그때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실시했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까? 그럴 리 없다. 엘리트 지역 배분 이전에, 엘리트 경쟁의 내용이 생산성 없는 지대 추구에 불과했기에 조선은 망한 것이다.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와 로스쿨을 지망하고 저학력·저소득층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오늘 대한민국은, 과연 조선의 저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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