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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윤-한 ‘배신의 정치’ 단계 진입?…여권 “공멸 막자”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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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퇴장하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주호영 국회 부의장, 추경호 원내대표 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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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조차 하기 싫은 사이가 된 것일까.



검찰 시절부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 노출됐다. 윤 대통령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때 ‘윤석열 정권 소통령’으로 불렸던 여당 대표와 대통령이 대면조차 불편한 사이가 된 것이다. 윤-한 두 사람 갈등 단계를 지나 ‘친윤계-친한계 심리적 분당 상태’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자리 배치 변경에 불참



한 대표는 지난달 30일 열린 한국경제 주최 행사 시작 30분 전 불참을 통보했다. 윤 대통령도 참석하는 행사여서 한 대표의 갑작스러운 불참 통보 이유를 두고 여러 말이 나왔다. 독대 불발 이후 한 대표가 대통령 정무수석을 통해 독대를 재요청하자 ‘윤-한 두 사람이 전화통화도 못 하는 사이가 됐느냐’ ‘시간 한 번 내달라는 하면 대통령이 거절하겠느냐’는 말이 여당에서 공개적으로 나온 터였다. 행사 자리 등을 빌려 독대 요청 기회를 잡으라는 충고였는데 한 대표가 행사 불참으로 이를 차 버린 셈이다.



이는 윤 대통령 옆 테이블에 배정됐던 한 대표 자리가 더 먼 곳으로 옮겨진 것이 이유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친한계 핵심 관계자는 4일 한겨레에 “원래 자리와 달리 변경된 자리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자리였다”고 했다. 시사저널은 대통령실 쪽에서 자리 변경을 한국경제 쪽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자리 변경 요청이 윤 대통령 뜻이 아닐 수도 있다. 용산 참모들이 ‘심기 경호’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쪽이 됐든 한 대표의 불참은 두 사람 관계가 봉합하기 힘든 지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자리 의전 문제로 대통령 참석 행사에 여당 대표가 불참했다는 것은 윤석열·한동훈 관계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이런 행사는 사전에 자리 배치도를 미리 주는데, 한동훈 성격상 갑자기 다른 자리로 옮겨진 것을 참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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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신문 창간 60주년 기념식에서 영상을 시청한 뒤 박수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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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유승민 배신의 정치” 결말은



의-정 갈등 같은 정책 방향을 두고 여권 내부 의견이 갈리는 것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자주 있는 일이고, 그나마 조율 여지가 있다. 다만 대통령이 ‘얼굴도 보기 싫다’고 할 때는 답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박근혜-유승민 관계가 그랬다.



유승민 전 의원은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는 등 줄곧 친박계 중심이었다. 박근혜 정권 3년 차에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뒤 진보적 의제로 다른 목소리를 내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공개 낙인이 찍혔다. 친박-비박 갈등이 지속했고 2016년 총선 공천에서 유 전 의원 등이 대거 낙천하자, 이후 심리적 분당 상태가 깊어졌다. 이는 결국 새누리당 내 찬성표를 발판삼은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검찰 한직에 있던 한 대표를 윤석열 정부 첫 법무부 장관으로 깜짝 발탁해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줬고, 총선을 앞두고는 장관직에서 바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줬다.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 임명 직후부터 김건희 여사 논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대사 임명 등을 두고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더니, 3년 차로 접어든 윤석열 정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뒤에는 의-정 갈등 해법을 두고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정권 때와 겹쳐볼 때 윤-한 두 사람 사이가 ‘배신의 정치 이후’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본다. 친윤-친한계 인사들이 언론을 통해 거리낌 없이 상대방을 비판·비난하는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은 친박-비박 충돌 때보다 더 심각하다. 국회 탄핵소추 당시 여당에서 30명 정도 ‘반란표’(실제 70표 넘는 탄핵 찬성표가 여당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가 필요했다면, 지금은 단 8명 정도만 등을 돌려도 정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 국민의힘 친한계 의원은 17명 정도다. ‘코어 그룹’은 이보다 적지만, 한 대표와 같은 배를 탄 이들이라 ‘전면전’이 벌어지면 후퇴보다는 전진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여당 내부에서 “사이는 안 좋더라도 보수 공멸은 막아야 한다”며 연일 경고등을 켜는 이유다.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퇴장하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등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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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날, 순식간에 지나간 악수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어진 두 사람은 자리 배치 논란 바로 이튿날인 지난 1일 오전 10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어색하게 마주쳤다. 행사 성격상 자리 배치를 바꿔달라거나 불참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 윤 대통령은 단상에 착석하기 전 참석자들과 빠르게 악수를 했다. 한동훈 대표, 주호영 국회 부의장,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순으로 악수했다. 한 대표와는 손을 잡았다가 바로 뺐지만, 주호영·추경호·박찬대와는 2∼3번씩 악수한 손을 흔들며 눈 맞춤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당인 주호영·추경호 두 사람은 악수가 끝난 뒤에도 웃으며 서로를 쳐다봤지만, 한 대표는 혼자 입을 꾹 다문 채 행사장 정면을 응시했다. 윤 대통령·한 대표 모두 서로에 대한 불편함을 숨기지 않은 자리였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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