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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또 ‘비닐하우스’에서…스러진 타이 노동자 부부의 코리안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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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기도 포천시의 한 채소농장에 있는 불법 기숙사. 포천이주노동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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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부부의 ‘코리안드림’이 하룻밤 사이 산산조각이 났다.



4일 아침 6시49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서 이주노동자 2명이 쓰러져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타이(태국)인 남성 ㄱ(64)씨와 같은 국적 여성 ㄴ(56)씨 등 남녀 2명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난방용 액화석유가스(LPG) 기기를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진 것으로 보고, 이들의 신원을 파악한 뒤 부검 등을 통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과 주민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부부는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면서 인근 밭에서 대파 농사 수확을 돕는 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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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6시49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타이 이주노동자 2명이 숨졌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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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평창군 진부면에서 생활하게 된 것은 본격적인 대파 수확철이 시작된 지난달 중순부터다. 이 마을에 온 대파 수확 노동자 10여명과 함께다. 이들은 평창군에서 관리하는 외국인 계절노동자가 아니라 10여년 전 국내로 입국해 불법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동네 주민들은 “(이 부부가) 경기도 어딘가에서 왔다고만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인근 숙소에서 다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했지만 이내 이 부부만 비닐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경찰 관계자는 “고용 농가에서 처음부터 이 부부에게 비닐하우스 숙소를 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엔 단체 생활을 했는데 아무래도 함께 지내기 불편해 비닐하우스로 거처를 옮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이 거처를 옮긴 비닐하우스는 애초 주거용 시설로 건설된 것이 아니다 보니 주거 환경이 열악했다. 맨바닥에 설치된 농업용 깔판 위에 얇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해야 했다. 깔판 자체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데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바닥 냉기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다.



주민 박아무개(50대)씨는 “대파밭 가까이 비닐하우스 2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거기서 사람이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처음 진부에 온 9월 중순만 해도 낮에는 30도가 넘고 최저기온도 20도 이상이라 견딜 만했겠지만 최근에는 최저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져 더운 나라에서 온 부부 노동자에겐 견디기 힘든 밤이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결국 추위를 참다못한 이들은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10㎡ 남짓한 비닐하우스 공간을 꼼꼼하게 틀어막고 난방용 액화석유가스 기기를 틀어놓고 잠을 청하다 사고를 당했다.



김달성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4년 전 이주노동자) ‘속헹’씨 사고 이후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고 일부 변화가 있긴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문제로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했다면 최소한의 주거기본권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12월20일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체류 기한 만료를 앞두고 귀국 항공권까지 예매해놨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 속헹씨가 갑자기 닥친 한파에 숨지면서 논란이 됐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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