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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사설] 재벌 지배구조 민낯 드러낸 영풍-고려아연 ‘쩐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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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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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32위 영풍그룹에서 동업자 간에 핵심 계열사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벌이고 있는 ‘쩐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영풍의 장형진 회장 쪽은 지분 매입 대금으로 약 2조5천억원대,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 쪽은 약 3조원대의 거액을 내걸었다. 장 회장 쪽은 1대 주주 자리까지 내주며 사모펀드를 끌어들였고, 최 회장 쪽은 회삿돈을 대주주 경영권 방어에 쏟아붓고 있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으로 매출이 약 10조원에 이르는 알짜 기업이다. 고 장병희·최기호 두 창업자가 동업해 1949년 설립한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가 영풍,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계열을 각각 나눠서 경영해왔다. 두 가문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싹튼 건 최윤범(49) 고려아연 회장의 ‘3세 경영’이 제 궤도에 오르면서다. 최 회장은 2022년부터 한화·엘지화학 등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며 우호지분을 확보해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 장 회장 쪽은 지난달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인 엠비케이(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 최대 14%를 공개매수하겠다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했다. 매수가는 처음 주당 66만원이었다가 75만원으로 올렸다. 이에 최 회장 쪽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을 파트너로 삼아 주당 83만원에 최대 18%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대항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장 회장 쪽은 패색이 짙어지자 4일 매수가를 다시 83만원으로 높였다. 두 가문 간 ‘묻고 더블로 가’ 식 쩐의 전쟁의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이번 분쟁은 재벌 지배구조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가문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 그러한지 자문해봐야 한다. 장 회장 쪽은 사모펀드에 1대 주주 자리까지 내줬다. 사모펀드는 수익성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만큼 인수 이후 인력 감축과 알짜 자산 매각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최 회장 쪽은 약 2조7천억원의 회사 빚을 내어 자사주를 매입하는 초유의 카드를 쓰고 있다. 기업 경쟁력 제고에 사용해야 할 회삿돈을 이렇게 써도 되는지 앞으로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 소액 주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고려아연 주가는 공개매수 선언 전후 50만원대 중반에서 77만원대로 폭등했다. 사태 전개에 따라 주가가 급락해 뒤늦게 뛰어든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재벌 3·4세 경영권 승계가 진행되는 기업들이 적지 않고,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이 많아 적대적 엠앤에이가 빈발할 수 있는 만큼 당국에서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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