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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단독] "막내 사비로 국장 밥산다"…공무원 57% 겪은 '모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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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7월 국가공무원 7급 공개경쟁채용 제1차 시험 당시 수험생들이 서울 관악구 한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인사혁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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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 직원들 사비를 걷어 부서에서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국‧과장 식사를 대접하는 건 불합리한 관행이에요. 의무적으로 장소 선정과 차량 대기, 운전에 유류비 부담까지 번거롭고 부담스럽습니다.(지방자치단체 3년차 공무원 이영훈(20대‧가명)씨) "

젊은 공무원 엑소더스 현상이 대두한 가운데, 공무원 조직의 불합리한 문화 중 하나로 꼽히는 ‘국·과장 모시는 날’을 최근 1년 새 직접 경험한 공무원이 57%가 넘는 등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시는 날’은 부하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과장이나 국장 등 상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이다.

2021년 9월 대전시청 새내기 9급 공무원이 임용 8개월 만에 커피·물 심부름과 같은 ‘과장님 모시기’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사회 문제로 공론화된 뒤 3년이 지났지만 근절되지 않은 것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가 젊은 공무원들의 주요 퇴직 사유 중 하나로 거듭 지목되는 상황에서 실효성있는 조직 문화 개선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달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1만2027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모시는 날 관행을 ‘알고 있다’는 답변은 75.2%(9048명)로 나타났다. ‘모른다’는 답은 24.8%(298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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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최근 1년 내에 모시는 날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57.3%(5182명)이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점심식사(커피 제외 57.4%‧커피 포함 53.7%, 중복응답 포함)를 부하 직원들이 대접했다고 답했다. 모시는 날의 빈도는 ‘주 1~2회’라는 답변이 80.8%(4413명)로 가장 많았다. ‘주 3~4회’는 10.8%(589명), ‘주 5~6회’ 7.7%(421명)이 뒤를 이었다.

식사비 계산 방법은 ‘사비를 걷어 팀비 운영’이라는 답변이 54.5%로 가장 많았다. ‘부서장 업무추진비’는 31.3%였고 ‘재정 편법‧불법 사용’이란 답변도 4.1%로 조사됐다. 재정 유용 문제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모시는 날이 문제가 되자 ‘중식보안’ ‘석식보안’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지자체 6급 공무원 박모씨)도 나왔다.

특히 이번 조사에 참여한 상당수 공무원들은 모시는 날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지만,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모시는 날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69.3%(‘매우 부정적’ 44.8%‧‘약간 부정적’ 24.5%)에 달했다. 모시는 날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이들도 68.8%로 조사됐다. 이들 중 84%(3000명, 중복응답)는 모시는 날이 ‘시대에 안 맞는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답했다. ‘부서장과 식사가 불편하다’(57.5%‧2051명)거나 ‘금전적 부담’(42.8%‧1527명)이라는 답변도 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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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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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실제 공무원들은 소통을 위해 어느정도는 상급자와의 식사 자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사비로 이를 부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매번 그 비용을 직원들 사비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문제” “부서장이 식사부터 커피까지 1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결제한 적이 없다. 업무와 상관없는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면서 이게 소통이라고 한다” “실수령액 190만원인 9급 3호봉인데 팀장님이 커피를 쏘라고 시켰다. 제발 없애달라”고 말했다. “매번 조사만 하지말고 현실을 바꿔달라”는 토로도 있었다.

위성곤 의원은 “낡은 조직문화는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공직을 떠나게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전국 지방 공직사회에 뿌리 깊은 관행이라 개인이 나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정부가 현실에 맞는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하지만 각종 현황조사 등 여전히 탁상행정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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